간송미술관 국보·보물 대구로 총출동…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종합)
서울서는 정기 전시·대구는 상설 전시
(대구=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다음 달 대구에 상설전시장인 대구간송미술관을 연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 대구미술관 옆에 들어선 대구간송미술관은 연면적 8천3㎡ 규모로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전시실 6곳과 보이는 수리복원실, 아트숍, 도서자료실 등을 갖췄다.
9월 3일 시작하는 개관전 '여세동보'(與世同寶)전에는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앞장선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국보와 보물이 총출동한다.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을 소개하는 전시를 위해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국보 12건과 보물 30건 등 42건 중 실물을 전시할 수 없는 탑 2건을 빼고는 모두 대구로 옮겨왔다. 간송미술관 국보·보물전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전시명 '여세동보'는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의미로, 위창 오세창이 간송미술관의 출발점인 보화각 설립을 축하하며 지은 정초명(定礎銘)에서 빌려 왔다.
백인산 대구간송미술관 부관장은 27일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으로 치면 선수단 입장식 같은 전시"라며 "간송미술관의 대표작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인사 같은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날 개막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 사이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신윤복의 미인도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 28년인 1446년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자모글자 내용, 해설을 묶어 만든 책으로, 훈민정음 원본으로도 불린다. 1940년 경북 안동의 고가에서 발견된 것을 간송 전형필이 구입했던 것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다고 해 '무가지보'(無價之寶)로 불리는 간송미술관 최고의 소장품이다. 발견 이후 6·25전쟁 때 외에는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어 서울 밖에서 전시되는 것은 간송이 구입한 이후 84년 만이다. 서울에서도 간송미술관 밖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짧은 시간 전시됐던 것이 전부다. 이번 전시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위해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간송미술관의 또 다른 대표 소장품인 신윤복의 '미인도' 역시 전시장 한 곳을 따로 할애해 어둠 속에서 소수의 인원이 독대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된다. 전시장에는 최대 6명 정도까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선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과 그림을 지나면 교과서에서 봤던 도자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고려 상감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난초, 국화, 나비가 그려진 조선시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비롯해 청자오리형연적,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등이 관객을 맞는다. 그 뒤로는 간송미술관에 있는 문경 오층석탑과 괴산 오사리 승탑이 모형 매핑 영상 형태로 소개된다.
2022년 경매에 나왔던 국보 금동삼존불감과 계미명삼존불입상도 전시작에 포함됐다. 당시 두 점 모두 유찰됐으나 이후 금동삼존불감은 헤리티지 다오(DAO)에 판매됐다. 헤리티지 다오는 구입 후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작품 지분 중 51%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헤리티지 다오 기증'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회화 전시작들도 하나하나 유명한 작품들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마상청앵',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과 '월하정인', 김득신의 '야묘도추' 등 조선의 3대 풍속화가 대표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과 함께 조선시대 '삼재'(三齋) 중 한 명인 현재(玄齋) 심사정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그린 두루마리 그림인 '촉잔도권'은 화폭만 가로 8.1m가 넘는 대작으로, 그동안 서울에서는 전시장 공간 문제로 부분적으로만 공개됐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모두 펼친 채로 소개된다.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는 화첩 '해악전신첩'과 '경교명승첩' 중 주요 그림들이 전시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영남권에서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지류 문화유산의 수리 복원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미술관 1층에 들어선 '보이는 수리복원실'에서는 관람객들이 유리벽을 통해 실제 수리·복원 과정을 보면서 학예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전인건 관장은 "대구·안동을 비롯한 경북권은 유림의 본고장으로 우리나라 지류 문화유산의 절반 정도가 모여 있지만 보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수리·보전 노하우를 활용해 지류 문화유산의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에는 '간송의 방'이 따로 마련돼 예술가이자 교육자, 연구자로서 간송의 면모를 소개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대구시와 2016년 계약을 맺고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이후 최문규 연세대 교수의 설계로 2022년 1월 공사를 시작해 올해 4월 미술관이 준공됐다.
미술관은 대구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국비와 시비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대구의 시립미술관으로 등록됐으며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비슷한 운영 형태라고 간송 측은 소개했다.
간송 측은 서울 간송미술관에서는 지금처럼 봄과 가을에 짧게 정기전을 열고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간송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면서 1년에 한 두차례 기획전을 여는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 관장은 "보화각(서울 간송미술관)은 제한적이지만 특별한 경험을 위한 공간이, 대구간송미술관은 항상 가까이서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상설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 부관장은 "국공립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호림박물관 등 사립미술관·박물관 등과도 협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면서 "서울 전시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다른 기관과 교류한 다양한 전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1일까지. 유료 관람.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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