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윤 대통령이 이념전쟁을 하는 이유

기자 2024. 8. 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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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쪼개진 광복절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용산에 밀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8·15 경축식에 불참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반쪽 경축식에서 윤 대통령은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야기했다. 화룡점정은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로 찍었다. 누구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의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흉기라며 검은 선동 세력에 우리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멘토였던 이종찬 광복회장이 8·15 경축식에 불참한 것에 대해 참모들에게 “왜 이러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돌려드려야 할 거 같다. 다수의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런 철 지난 이념전쟁을 하려고 하는 걸까? 지지층 결집 등 고도의 정치 전략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지지율이 오를 만하면 헛발질을 한 게 현 정권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정치 전략이라면 전략을 짠 책사의 이름을 대봐라.

얼마 전 한 언론에서 전문가들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1위가 김건희 여사, 4위가 천공이었다. 2위, 3위가 한동훈 대표, 이재명 대표이니 전문가들조차 김건희 여사와 천공이 윤 대통령의 최측근 책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도의 정치 전략은 설득력 없는 소리이다. 그럼 흡수통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처럼 윤 대통령의 오래된 철학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윤 대통령의 통일철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흡수통일의 전략이라고 나온 게 북한 전단 살포라는 아주 낮은 수준의 정책이다.

피해의식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게 아마 정답에 근접할 거 같다. 윤 대통령의 57년 죽마고우라 불리는 분은 “한국정치가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극단적인 네거티브로 가다보니, 공격당하자 (자신도) 점점 극단으로 가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거 아닌가 싶다”라고 현재의 윤 대통령을 진단했다. 윤 대통령에겐 진보와 언론에 가지는 일관된 피해의식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야당과 비판 세력을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건 미국 대통령 시절 도널드 트럼프의 행동과 유사하다. 재임 당시 미국의 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눈뜨자마자 TV부터 켜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폭스 뉴스 등을 본다. 그리고 아이폰을 집어 들고 트윗을 날린다. 그에게 트위터는 자기를 끌어내리려 음모를 꾸미는 언론과 싸우는 아서왕의 명검 ‘엑스칼리버’와도 같다. 지금 윤 대통령이 그와 다른 것은 윤 대통령은 트윗이 아니라 연설로 자기를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엑스칼리버는 연설이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무얼 예상할 수 있나? 우선 제대로 된 국정과제가 용산발로 이뤄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지지층이 더 단단해졌을지언정 국정운영의 동력인 중도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인 국회상황에서 대통령이 기댈 것은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는 핵심 지지층이 아니라 지지의 외연확장인데 그 길과 점점 멀어져간다는 말이다. 또 지금 당장 지지율이 낮아도 용산이 뭔가를 할 의지가 있다면 상황이 개선되겠지만 그래 보이지 않는다. 20~30%대 지지율이 나오는 상황에서, 더구나 여당 대표와도 경쟁관계인 상황에서 이념전쟁을 하는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항해서 버티는 것이 대통령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둘째, 윤 대통령은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정치를 보고 있는데 당연히 야당과의 협치는 힘들 것이다. 정치 사안이야 그렇다고 쳐도 경제문제도 이러면 좀 곤란하다. 야당이 경제가 어려운데 재정정책을 쓰자고 하면 반대로 더 감세정책을 밀어붙일 수도 있으며, 경기부양정책은 필요하니 한국은행을 통해 통화정책으로 다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개혁은 개혁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혁과정도 중요하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의 조율이 필요한데 대통령이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6개월이 넘어가는 의료대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윤 대통령이 자주 격노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분노가 부하에게 표출되는 것은 줄었을지언정 그게 고스란히 연설에 담겼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치 전략은 바꾸면 되지만 마음의 문제이면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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