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난민의 꿈, 올림픽 새 역사 쓰다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팀은 메달 순위표 어디에도 없는 이들이다. 바로 37명의 선수로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난민 대표팀이다. 그들은 단순한 참가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복싱의 신디 응감바가 올림픽 사상 난민팀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카메룬 출신인 그녀는 영국에서 난민 신분으로 살아가며 훈련을 이어왔다. 그녀의 동메달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 전 세계 1억2000만 난민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이 메달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난민들을 위한 것입니다.” 응감바의 눈빛은 결연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동화처럼 끝나지는 않았다.
태권도의 하디 티란발리푸르. 그는 여성 인권을 외쳐 조국 이란을 등져야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난민으로 처음 10일을 숲에서 보냈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소파에서 3개월을 지냈다. 이란에서 8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였던 그는 난민의 신분으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살아야 했다. 그 긴 여정 끝에 선 올림픽 무대였지만 예선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 자체가 이미 승리였다.
난민팀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이번이 난민팀으로 두 번째 올림픽인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그리스로 탈출할 때 난민들을 태운 보트를 3시간 넘게 끌고 안전한 해변까지 헤엄쳤던 영웅이다. 그녀는 경기장 안팎에서 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우리는 단순한 난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운동선수이자, 꿈을 가진 인간입니다.” 마르디니의 말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이번 대회 난민 대표팀 중 눈길을 끄는 이는 브레이크댄스 선수로 나선 마니자 탈라시였다. 탈라시는 18세 전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레이크댄스를 알게 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브레이크댄서 크루에 속한 유일한 여성 댄서였다. 엄격한 보수적 사회인 아프간에서 비걸이었던 탈라시는 난민으로 이번 올림픽에 당당히 참가했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아프간 여성에게 자유를”이라는 메시지를 펼치면서 실격 처분을 받았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 금지된 올림픽 현장이지만, 탈라시는 자신의 행동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난민 대표팀은 인권과 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로 국경과 정치적 갈등을 넘어, 스포츠가 가진 순수한 가치를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의 박수가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스포츠를 통해 그들의 재능과 의지를 보았다면, 이제는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남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난민팀은 희망과 포용의 강력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상징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의 기회, 취업의 기회, 그리고 안전한 삶의 터전. 이것이 난민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들이다. 올림픽 정신이 말하는 평화와 화합이 경기장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파리의 성화는 꺼졌지만, 난민들의 꿈을 향한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난민팀의 진정한 레이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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