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총량 규제’까지 꺼내든 금감원
‘신용할당’ 부작용에 폐지됐던 제도 부활…“시장 왜곡 부를 것”
전문가들 “지침도 없이 일괄 규제…번지수 잘못 짚은 것” 비판
은행권에 대한 ‘더 센 개입’을 예고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발언이 나온 지 이틀 만에 금감원이 대출이 과도한 은행을 별도 관리한다는 사실상의 ‘총량 규제’ 계획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라는 ‘정공법’ 대신 지침도 없이 은행별 대출 총량을 제한하는 당국의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은 27일 설명자료를 내고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 대비 과도한 은행에 대해 별도 규제를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충현 부원장보는 “은행 전체의 현 DSR 평균은 20~30% 수준”이라며 “연간 가계대출 경영계획 대비 실적이 과도한 회사에 대해선 평균 DSR을 낮추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DSR 비율을 낮추거나 DSR 적용 대상을 일괄해 넓히는 게 아니라 개별 은행이 계획한 대출 총량을 지키지 못하면 은행별 DSR 평균값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2021년 시행됐다가 폐지한 총량 규제가 사실상 부활했다고 본다. 총량을 관리하지 못한 은행에 ‘DSR 페널티’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KB국민·우리·신한은행 등이 최근 내놓은 마이너스통장 한도 축소, 생활안정자금 제한, 주담대 보험 제한 등도 2021년 도입됐던 정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장 발언 후 개별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지침도 없이 부채를 줄이라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의 총량 규제는 2021년 부작용이 확인됐다. 자금 수요에 비해 대출 공급이 줄면서, 은행이 임의로 차주를 고르는 ‘신용할당’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윤수 서강대 교수는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 대출을 못 받는 시장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은행의 평균 DSR 값을 낮추더라도 대출받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은행에서도 한도가 달리 나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지난 25일 KBS 인터뷰에서 대출 규제로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효과는 불분명하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전국 주택 수 1500만호 중 상승지역은 강남과 그 주변의 30만호이고 나머지는 보합이거나 거래가 저조하다”며 “강남권은 대출로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는 만큼 일괄 대출 규제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DSR 규제라는 ‘정공법’ 대신 지침도 없이 쥐어짜는 ‘관치금융’을 한다며 비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DSR을 모든 부채에 30%대로 장기 관리하면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DSR을 너무 늦게, 제한적으로 적용해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한 대학교 교수는 “DSR 규제를 30%로 강화하면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가계부채 관리의 정공법이고 비차별적인 규제”라며 “당국은 물량 조절로 은행을 압박하는데, 이는 효과도 없고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원·김지혜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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