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벌레 잡겠다고 이렇게까지? [지구, 뭐래?]

2024. 8. 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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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러브버그떼가 출몰한 북한산 정상 [인스타그램 캡처]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웁니다”

산 정상을 가득 메운 검은 벌레 떼. 창문과 자동차는 물론이고 몸에도 수시로 달라붙는 벌레들. 최근 초여름마다 입길을 타는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팅커벨(동양하루살이) 등이다.

보기에 징그럽고 귀찮지만 해충은 아니다. 전염병을 옮기거나 사람을 물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기물을 분해하고 식물의 수분을 돕거나 포식자의 먹이가 되는 등 생태계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익충이다.

그럼에도 이 벌레들을 잡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서울시의회의 조례다. 시민들과 환경·동물권 단체들은 이 조례가 통과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특정 곤충 종을 방제하겠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생태계 파괴를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57개 환경⋅동물권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27일 오전 11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비과학적이고 반생태적인 러브버그 방제 조례안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서울환경연합 제공]

57개 단체가 함께하는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27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과학적이고 반생태적인 러브버그 방제 조례안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지난 20일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최근 러브버그, 팅커벨 등 곤충이 대량으로 발생해 시민의 일상 생활과 경제 활동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만큼 방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조례안을 발의한 윤영희 의원 등은 “현행 법률과 조례 상 관련 규정의 미비로 시민들의 민원 폭증에도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방제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올해 5월 기준 서울시에 접수된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8121건으로, 1년 전보다 약 45% 증가했다”고 제정 이유를 밝혔다.

서울 종로구 한 가정집 창문에 붙어있는 러브버그. [연합]

이 조례를 두고 “어떤 곤충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 조례가 될 수 있다”는 여론이 거세다. 실제 입법예고에는 이례적으로 약 380건의 시민 반대 의견이 제출됐다.

우선 조례가 비과학적이라는 게 주된 지적이다. 조례안은 ‘대발생 곤충’을 전염성 병원체를 매개하지 않더라도 대량 출현해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또는 불편을 주는 곤충으로 정의하는데,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야기다.

단체들은 “러브버그나 팅커벨뿐 아니라 매미, 벌 등 어떤 곤충도 이 조례를 근거로 방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브버그 [독자 제공]

현실적으로 특정 곤충만 방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러브버그나 팅커벨 등 방제 대상 곤충뿐 아니라 다양한 곤충과 새들도 피해를 입게 되며, 이로 인해 생태계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게 단체들의 우려다.

서울에서 러브버그가 처음 대발생한 곳으로 지목되는 은평구에서 생태조사단 활동을 진행하는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는 “친환경이라는 ‘끈끈이 롤트랩’에는 무당벌레, 파리, 나방, 꿀벌, 이름 모를 애벌레 등 많은 생물이 붙어 죽는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수많은 생물의 먹이 은신처이자 삶터가 되는 낙엽을 제거하는 방식를 과연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단순히 징그럽다는 이유로 생명체를 ‘물건 치우듯’ 없애려는 반생태적인 접근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곤충들이 사라지면 곤충을 먹이로 삼는 동물과 곤충을 매개로 수분을 하는 식물까지 생태계가 무너지게 된다. 이는 인간에게도 큰 타격이다.

조현정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기획팀장은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곤충 개체 수가 줄고 있다. 무분별한 방제는 생태계 교란과 같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기후변화 해결과 생물다양성을 위한 정책 마련에 더욱 고심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도 성명서르 통해 “그동안 곤충의 생태를 설명하며 공존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대발생 곤충에 대한 시민 혼란이 줄어들고, 포용적 인식과 긍정적 이해가 커지고 있었다”며 “서울시의회의 이번 조례안은 그동안 서울시와 전문가, 시민들이 쌓아온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교란시키는 해로운 조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고 상임위원회 안건심사 과정에서 조례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례안은 다음달 6일 심사될 예정이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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