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남포동 극장가의 전성기를 돌아보며

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2024. 8. 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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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1987년의 여름날이었다. 이미 미국에서 1985년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날이었다. 필자는 집인 해운대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동래역으로 이동해 당시 얼마 전 개통한 1호선 2단계를 이용, 종착역이었던 중앙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남포동 부영극장까지 걸었다. 무더위로 땀을 뻘뻘 흘려 셔츠가 모두 젖어 버렸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개봉 첫 날 선물로 선착순 100명에게 티셔츠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매표구에서 티켓과 티셔츠를 수령한 후 화장실에서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백 투 더 퓨처’의 로고가 빨간 색으로 프린트 된 그 옷을 입고 영화를 관람했다. 이 영화는 필자가 영화 감독이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 되었고, 그 티셔츠는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채로 아직도 옷장 안 어느 구석에 보관 돼 있다.

부영극장은 문을 닫았고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과 함께 ‘비프 광장’으로 명명된 그 동네에는 이제 극장 건물이라고는 부산극장 딱 하나만 남아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남포동 극장가의 전성기에는 부산 부영 대영 혜성 제일 국도 아카데미, 무려 7개의 개봉관이 한 블록 안에 모여 있었다. 이정도로 극장이 밀집돼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유일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바탕에는 이런 인프라가 한몫했다. ‘한 거리가 거대한 멀티플렉스’였던 셈이다. 2000년을 전후로 한 멀티플렉스로의 전환기까지도 남포동 극장가는 건재했다. 물론 서면에도 몇 곳의 극장이 있었지만 ‘영화를 본다’는 여가 활동은 주로 남포동 극장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극장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롯데시네마 대영이 영업을 종료하면서 남포동 극장가에는 부산극장만이 살아남아 있다. 단순히 원도심의 쇠락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용 TV 수상기의 크기와 화질이 개선되고, OTT 등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개인 매체가 발전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팬데믹 이후로 관객의 생활 패턴이 달라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전 최민식 배우가 말한 것처럼 극장 관람료가 높아진 이유도 있다.

현재 1만6000원까지 오른 일반 영화의 티켓 값은 ‘단시간 내에 빠른 인상‘이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비싸 보인다. 필자가 ’백 투 더 퓨처‘를 관람했던 날의 관람료는 2500원 정도였을 것이다. 학생들이 주로 가는 저렴한 식당에서 15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 2500원은 그렇게 싼 요금은 아니었다. 한국의 극장 요금이 전세계적으로 비교해서 가장 싼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이동통신 할인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한국 영화가 발전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 길지 않은 기간동안 관객층의 확장을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면, 현재 극장 관람료는 비싸다. 하지만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극장용 영화가 여러 번 거친 변화 중의 일부분이다. 이제 어느 극장 체인은 일시적 이벤트이긴 하지만 거의 50% 할인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관람료는 오르기도 하고, 또 내리거나 오랜 세월 동결되다시피 하면서 결국 수요자의 심리와 평균을 이루게 된다. 지금은 잠시 그 평균을 상회하고 있을 뿐이다.

극장용 영화는 지금까지 수차례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다. 라디오가 출현했을 때, 흑백 TV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컬러TV 수상기가 표준이 됐을 때, 비디오가 출현했을 때, 인터넷이 보급돼 디지털 파일로 영화를 다운받게 됐을 때, IPTV가 가정마다 들어갔을 때, 그리고 이제는 OTT 때문에 극장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대세다. 하지만 극장은 부침은 있었지만 공룡처럼 멸절한 적은 없다.


불특정 다수의 여러 사람과 반응을 공유하며 극예술을 관람하는 행위는 지난 250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계 모든 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남포동 극장가의 전성기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을 잃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략의 낙관론으로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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