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市 제대로 작동않는 여론수렴 시스템…행정력 낭비 초래

이병욱 기자 2024. 8. 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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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사업 잇단 발목

- 구덕운동장 재개발 주민 반대
- 시민·정치권 등 전방위 확산에
- “의견 묻겠다” 뒤늦게 한 발 뒤로
- 백양터널도 유료→무료화 전환
- 두 사업 모두 공론화 과정 미흡

부산시가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데 이어 백양터널 통행료 유료화 정책을 철회하고 무료화(국제신문 지난 27일 자 1·3면 단독 보도)하기로 하는 등 ‘오락가락’ 행정을 보여 빈축을 산다. 두 사업 모두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시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다 무산 또는 좌초 위기를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는 지방의회와 주민 여론을 수용해 사업의 추진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하지만, 불필요하게 행정력을 낭비한 것은 물론 스스로 행정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부산시가 최근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했던 사업이 무산되거나 좌초 위기에 놓여 비판을 받는다. 사진은 구덕운동장 전경. 이원준 기자


▮주민에 정치권까지 나선 구덕운동장 재개발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지난해 12월 해당 사업 대상지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시는 과거에도 노후한 구덕운동장을 허물고 축구전용구장 등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자 측이 포기하면서 무산됐다.

이에 시는 국토부의 도시재생혁신지구로 지정받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공공기금 출자·융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7990억 원을 들여 구덕운동장 일대 부지 1만1577㎡에 1만5000석 규모 축구전용구장과 문화·생활체육시설,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계획에 8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시는 주민설명회 등을 거치며 아파트 건립 규모를 600가구로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역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곽규택(서동) 의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토부 장관에게 주민 반대 여론을 전달했다. 공한수 서구청장마저 부산시에 사업 재검토를 요구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는 줄곧 ‘막대한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파트 건립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업 강행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지난 20일 ‘시민 의견을 물어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무려 8개월 동안 행정력을 낭비한 꼴이 됐다.

▮백양터널 유료화도 반대 여론에 뒤집어

국제신문 취재진이 항공촬영한 백양터널 요금소. 전민철 기자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 계획 재검토를 발표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시는 백양터널 통행료 유료화 정책을 뒤집었다. 박형준 시장은 “내년 1월 10일부터 백양터널 통행료를 무료화한다”고 발표했다. 민간사업자로부터 관리운영권을 이관받은 뒤에도 통행료를 현재보다 낮춰 계속 받겠다던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백양터널 통행료 문제도 구덕운동장 재개발과 똑같은 과정을 거친 끝에 시가 번복했다. 시는 애초 백양터널 통행료를 무료화하면 교통량이 최대 40%가량 늘어나 일대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만큼 유료화를 유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민 부담 경감을 위해 현재 소형차 기준 900원인 통행료를 500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다. 4차로인 백양터널 옆에 새로운 터널(3차로)을 뚫어 총 왕복 7차로로 확장하는 ‘신백양터널’이 완공되면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큼 그때까지 유료화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사상구와 부산진구 주민은 물론, 시민단체, 지방의회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시의회는 백양터널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시의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부산시민단체연대는 “백양터널 유료화와 신규 터널 증설은 전문가와 이용자, 지역 주민 등과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는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반대 여론에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꺾지 않았으나, 결국 반대 여론에 정책을 철회했다.

상황이 이렇자 시가 정책 추진에 있어서 사전에 시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을 충실히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시가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잇따라 사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행정력을 낭비하고 행정 불신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모든 정책 추진 과정에 있어 시민 여론을 더욱 세밀하게 살피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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