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목이 노래합니다 ‘아, 괜찮을 거야!’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목 잘린 여자들이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감옥, 콩시에르주리 창문 앞에 도열한 채 자기 머리를 들고 나타났던 것이다. 혁명 당시 콩시에르주리의 별칭은 ‘단두대 대합실’이었다.
여자의 잘린 머리는 새빨간 입술을 쫑긋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라는 제목의 프랑스 대혁명 시기 민요라고 했다. ‘귀족들의 목을 매달아버리고 혁명을 완수할 테니 괜찮을 거야’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의 가사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라며 혁명의 실패를 애달파한 한반도의 옛 노래를 떠올리면 저 유럽인들의 신나는 혁명가에선 그야말로 ‘성공한 민중 혁명’의 기개가 느껴졌다.
개회식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다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목 잘린 여자들 앞으로 프랑스 혁명군 여성이 배를 타고 지나갔다. 1789년 10월, 여성 민중은 무기를 들고 대포를 끌며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서 국왕을 파리로 데려오는 전과를 올렸지만 평등한 ‘시민’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2024년 올림픽에서 혁명의 상징으로 재현되다니!
당시 단두대 공개 처형은 대중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흥분을 불러일으킨 정치적, 사회적 이벤트였다. 단두대에 오른 여자는 사치와 향락의 상징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뿐만도 아니었다.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올랭프 드 구주도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공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여성, 흑인, 노예, 사생아 등 소외된 약자들이 배제되었다고 보았고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제10조) 그는 피부색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포하고 유색인종과 여성의 투쟁을 연결시킨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
‘혁명 여성들’은 계몽사상을 습득한 남성 시민의 동지라기보다 이성적인 ‘머리’가 없고 동물적이며 야만적인 존재로 폄훼되었다. 여성 참정권과 이혼권, 동거권을 주장하며 결혼제도 바깥에 있었던 구주는 성적으로, 가정적으로 조신한 여자가 아니라며 지탄받은 위험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의 적의와 여성 연대 부재”(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속에서 홀로 목소리를 내고 투쟁했다. 금지된 출판물을 인쇄했다며 구속된 구주는 민중의 지지자를 비방하고 내전을 선동한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단두대에 올라 복수를 당부한 뒤 끝내 목이 잘렸다. 구주의 목소리가 재조명된 것은 죽은 뒤 200년이 지나서였다.
목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신체 부위다. 인류는 권력에 방해가 되거나 싸움에서 저항하는 자들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목을 베는 참수라는 오랜 처형 방식을 사용해왔다. 유럽 초기 기독교 시대엔 특히 기적을 일으킨 참수 순교자들이 여럿 나왔는데 이들을 ‘세팔로포르’(cephalophore)라고 일컫는다. ‘머리를 운반하는 자’라는 뜻이다. ‘역사 즐기는 법’의 저자 박신영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앙투아네트가 등장한 장면을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서서 말하는 것이 생드니와 같은 순교자의 이미지”라고 해석했다. 3세기 중엽 이탈리아 태생으로 파리의 첫 주교로 파견된 생 드니는 세팔로포르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때 참수를 당한 성인은 잘린 자신의 목을 들고 걸어가면서도 강론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박 작가는 자기 목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앙투아네트의 모습이 죽어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순교자 전통의 연결선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 ‘근친강간’을 비롯한 여러 흑색 소문과 억울한 혐의를 소명하던 왕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이번 올림픽 개회식 기획자들 또한 인터뷰에서 유럽 성인들의 세팔로포르 전통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결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영미권 학자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으로서 앙투아네트의 머리 없는 몸이 프랑스 공화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프랑스 혁명의 복잡한 과거를 고의로 단순화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기획자들은 올림픽이라는 엄숙한 국가주의 대항전을 비웃으려는 농담이라며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어깨를 으쓱 올릴지도 모른다.
목이 잘린 여성 성인들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8세기의 영국의 성 오스기스는 수녀가 되려 했지만 부모의 뜻으로 정략결혼했다가 어렵사리 수녀원을 창립한다. 이교도의 침입 때 기도하던 중 참수 당한 그는 죽은 뒤 자신의 손에 머리를 들고 수도원 문까지 걸어갔다가 쓰러졌고 그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는 치유의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스위스 취리히에도 기독교 박해 때 참수 당한 뒤 자기 머리를 들고 언덕을 걸어갔다는 여성 성인 레굴라의 전설이 있다. 304년께 로마 지역의 순교자였던 성 아녜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동정의 삶을 살기로 했지만 외모가 아름다워 수많은 남성들의 구애에 시달렸다. 기독교 박해 때 급기야 그의 청혼을 받아주지 않던 한 남성의 고발로 신자임이 폭로돼 집단 강간 위험에 처하는 등 고통을 겪다 끝내 참수를 당한다.
한국 가톨릭사에서도 참수를 당한 여성 성인들이 존재한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는 결혼했지만 평생 남편과 동정을 지키며 남매처럼 살다 붙잡혀 배교하지 않고 참수되었다. 그는 여러 장의 편지로 목소리를 후대에 남겼고, 처형 장면을 본 목격자들은 목에서 흰 피가 쏟아졌다고 전한다. 기독교 여성 순교자들이 긴 단식을 하면서 사실상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동정의 삶을 살기로 서원한 것은 순결 서약이라기보다 그 시절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주체적인 삶이 허락된 수도자로 평생을 바치겠다는 결연한 선언과 실천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성싶다. 목이 잘리면서 존재를 증명했고 목소리를 남긴 셈이다.
고대 사회부터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압력이 존재했음을 주장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사회연결망서비스에서 목을 따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여성 저널리스트를 협박한 엑스(옛 트위터) 유저의 아이디가 ‘대가리없는암퇘지’(headlessfemalepig)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었다. 가상세계 단두대에서 여성의 목을 치겠다는 협박에 대해 비어드는 “남성이 발언하는 세계에서 여자들을 잡아 빼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에서 잘린 목은 더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을 테니까.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메리 비어드)
정치적 올바름 강박이라느니, 신성 모독이라느니 여러 비판이 나오지만 유럽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번 올림픽 개회식이 성별이나 인종과 무관하게 모두가 춤추게 한 행사였다며 “유럽의 해방적 숨결”이라 높게 평했다. (한겨레 8월19일치 25면 ‘세계의 창’) 반라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연 그곳에선 적어도 목이 잘려 나가서 이미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여러 ‘비체’(abject)들까지 입을 열 기회는 주어졌다.
그리고 축제를 마친 이들은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는 ‘목소리’를 위해 금메달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제 목소리에 힘이 좀 실렸으면 좋겠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알제리 복싱 금메달리스트 이마네 칼리프는 올림픽 기간 동안 자신의 성별 의혹을 제기하며 괴롭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을 고소했다. 그가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낸 목소리야말로 올림픽 정신이었다.
“내가 세계에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사람이 올림픽 정신을 준수하고 타인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올림픽에서는 나같이 비난받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억울함을 오래 참아내고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에게 성공한 혁명가의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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