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 "중3때 클럽 전전·고딩때 절도로 경찰서行→정학"..파란만장 과거 고백[전문]
[OSEN=김나연 기자] 방송인 김송이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25일 김송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예배를 다녀온 인증샷을 올렸다. 이와 함께 그는 "나의 청소년기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살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때는 치맛바람 쎈 엄마들의 학생들만 대놓고 이뻐라 차별한 그 시대를 살아서 뭐, 울엄마가 돈봉투 하나 건네지 못했던지라 그림자 취급 받고 개무시 당했다. 중학교때도 여전히 마찬가지였지만 사춘기와 함께 삐뚤어지기로 함"이라고 방황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중3때 나이트클럽을 내 성전으로 삼았던건 나에게 있어서 억지로 잠을 잔거였다. 고딩때는 뽀리까고(훔치고) 경찰서 가고 수업땡땡이 치고 무기정학 당하고. 그래도 가출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부모님이 이혼하고 우리 어린 4남매끼리만 살았기때문에 가출 할 필요가 없었지. 성인이 되고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냥 앞이 캄캄한데 내 힘으로 막 살았고 내사랑 원래오빠를 너무나 어린 나이에 만나서 의존하며 살았다.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앞서 김송은 지난 2022년에도 과거 사진을 올리며 "저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침 좀 뱉고 껌도 좀 씹으며 많이 놀아봤어도 양심과 도덕 윤리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과거는 없었지만 실수한 과거는 많았다"고 언급했던 바 있다.
이 가운데 김송은 "누가 나를 깨웠나 두렵고 무서운 큼지막한 사건들(고난들)이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무방비 상태에서 맞은 결핵성뇌막염으로 뇌병변장애인이 될 뻔한 일, 인기의 바벨탑을 쌓던 나의 우상 (강)원래오빠가 교통사고로 1급장애인이 되버린 일, 내아들 같은 울 똘똘이의 손을 쓸 수 없는 림프암과 죽음, 울친정엄마의 급성말기암과 시한부판정 그리고 죽음. 그때는 마냥 두려워서 다시 애써 잠들려고 발악을 했고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했다"며 종교를 통해 아픔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도 내 옆의 사람들은 환경에 합리화하고 남탓하고 내 스스로 소견에 옳다 여기며 각기 자기 길을 가는데 묻지 않고 가는 그길이 망하는 길임을 알지만 말을 못할 때가 많아서 답답하고 안타까워 기도만 한다"며 "내가 아직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다. 경계를 넘는 사람 선을 넘는 사람, 당돌한 사람, 사기 치고, 나잘났어!, 자기잘못을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 호의를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 사람, 내로남불 정말 재수없다. 결론은 내가 먼저 말씀보고 먼저 겸비하고가자! 나만 회개하면 되는겨"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송은 2003년 클론 멤버 강원래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
이하 김송 SNS 글 전문.
나의 청소년기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살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때는 치맛바람 쎈 엄마들의 학생들만 대놓고 이뻐라~차별한 그 시대를 살아서 뭐, 울엄마가 돈봉투 하나 건네지 못했던지라 그림자 취급 받고 개무시 당했다.
중학교때도 여전히 마찬가지였지만 사춘기와 함께 삐뚤어지기로 함.뱅뱅뱅~
중3때 나이트클럽을 내 성전으로 삼았던건 나에게 있어서 억지로 잠을 잔거였다.
고딩때는 뽀리까고 경찰서 가고 수업땡땡이 치고 무기정학 당하고 …
그래도 가출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부모님이 이혼하고 우리 어린 4남매끼리만 살았기때문에 가출 할 필요가 없었지.
성인이 되고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냥 앞이 캄캄한데 내 힘으로 막 살았고
내사랑 원래오빠를 너무나 어린 나이에 만나서 의존하며 살았다.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더 많다.
(그래서 선이가 있는 지금이 난 좋다)
누가 나를 깨웠나 두렵고 무서운 큼지막한 사건들(고난들)이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무방비 상태에서 맞은 결핵성뇌막염으로 뇌병변장애인이 될 뻔한 일,
인기의 바벨탑을 쌓던 나의 우상 원래오빠가 교통사고로 1급장애인이 되버린 일,
내아들 같은 울 똘똘이의 손을 쓸 수 없는 림프암과 죽음,
울친정엄마의 급성말기암과 시한부판정 그리고 죽음,,,
그때는 마냥 두려워서 다시 애써 잠들려고 발악을 했고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주님은 나를 이러한 사건들로 세차게 내 몸을 뒤흔들고 깨우셨다.
2006년도 5월말 처음 우리들교회를 방문했을때 해,달,별이 떨어지고 인자가 구름 타고 임하시는 사건(마태복음)은 우리가정에 예수님이 방문하시는 사건이라는 주일설교였다.
‘나의 해달별은 울엄마인데… 주님이 방문?
아…그래서 불교신자였던 울엄마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암 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원수였던 아빠와 새엄마와 고모들과 극적인 화해를 하고, 이땅에 모든 쓴뿌리의 상처들을 다 해결해주시고 천국가게 하셨구나…’ 가 깨달아졌다.
그래서 첫날부터 지금까지 말씀이 나팔소리처럼 임하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은총을 주셨다.
(주님과 교회를 삿대질하고 욕하며 살았는데..내가 뭐라고,, 참 할말없는 인생이다.아멘 ㅠㅠ )
결론은 뭐,,지금도 사건 앞에서 다시 넘어진다.(욕까지 곁들이며) 일어나기 싫다. 짜증난다.
근데 말씀이 또 들린다 깨달아진다. 툴툴 털고 터벅터벅 다시 일어나 걷는다 를 반복한다.
나의 기도제목은 남편이 두손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아니 왜 하필 나야? 이가정에 왜 나를 먼저 부르셔서.. 짜증나게 ,,)
그런데 다음타자는 내동생이고 울올케,,그후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해본다.
(아팠지? 나도 아팠다. 마이 아팠다ㅎㅎ근데 아픔 뒤에 숨은 보석이 있더라)
스스로 결정하는건
뜨겁게 만나주신 첫신앙때는 매일 묻고 또묻고 내가 모르겠으면 꼭 목사님 말씀이나, 큐티, 사건, 환경,사람의 입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는 신비를 체험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게 신기방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질구레한 것들은 내가 막 결정하고 큰 일들은 목장과 초원님께 묻는다.
목장에서 물으면 목원(집사님들)들이 답해주는 게 하나님의 뜻이었다.
목장에서 묻지 않았던 일들은 백퍼 어그러졌고 당했고 망했었다.
그래서 잘못된 건 내 욕심때문이었고 내 삶의 결론이 너무나 맞았다.
(지금도 내 옆의 사람들은 환경에 합리화하고 남탓하고 내 스스로 소견에 옳다 여기며 각기 자기 길을 가는데 묻지 않고 가는 그길이 망하는 길임을 알지만 말을 못할 때가 많아서 답답하고 안타까워 기도만 한다)
내 열심과 결정이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음을 인정하나? 옳소이다!! 아멘!
그들도 세차게 대차게 뼈가 사무치게 맞아야 인정하게 될거다. ㅠㅠ (아프냐?나도 아프고 아팠다 주여…)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 등교시키느라 바쁘고 큐티책을 펴고 (매일은 아님) 매일 목장에 말씀 올리고,인스타 체크!
내가 아직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있다. 경계를 넘는 사람 선을 넘는 사람, 당돌한 사람, 사기 치고,나잘났어!,자기잘못을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고,인정하지 않는 사람,호의를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 사람,내로남불 정말 재수없다.
결론은 내가 먼저 말씀보고 먼저 겸비하고가자!
나만 회개하면 되는겨 (주님 왈: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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