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문제와 저널리즘의 책임
기후 위기 보도는 이 문제가 글로벌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이에 따라 언론 보도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도하기 어려운 주제로 꼽히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어 기후 변화에 대한 체감도가 높아지면서 시민들 역시 기후 위기 문제를 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기후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 국내 여러 언론사에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보도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기후와 환경 문제를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다 가깝게 의제화하고, 시민 공동의 책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이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관련 기획 기사를 통해 ‘쓰레기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게 되는가’를 다시 한번 질문하게 했고, ‘환경 문제’라고 막연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이제 이렇게 열린 논의의 장에서 어떤 의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에 대한 저널리즘의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은 종종 기후 위기 문제는 글로벌 기업이나 서구 강국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대자본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착취해 왔다는 점, 그리고 ‘쓰레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제3세계로 떠넘기면서 서구 강국들이 막대한 부를 누려왔다는 점에서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시민 개개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공동체적 책임감을 갖는 것 역시 필요하다. <폭염살인>의 저자 제프 구델은 에어컨이 냉방 기구가 아니라 열기를 재배치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올해 8월은 폭염 일수로 볼 때 역대 2위였다고 한다. 이러한 더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야 시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더위에 우리 사회가 ‘열기의 불평등한 배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에어컨을 쓰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기후 위기는 과학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변화를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전까지의 기후 위기 보도에 대해서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것은 기후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주체들이 추상적으로 묘사되거나 생략되고, 경각심을 유발하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오히려 시민의 무관심을 유발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후 위기의 문제를 보도할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룰 것, 그리고 이 문제의 연결 지점들을 다각적으로 드러낼 것이 주문되어 왔다. 지난 7월 전국농민대회에서 체포된 청년 농민 김재영씨 관련 사안의 경우, 수입 농산물 반대로 단순하게 축소되어 보도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 언론도 많았다. 하지만 지역 농업의 현장이 바로 기후 위기의 현장이자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 펼쳐지는 장이다. 김재영씨의 목소리 역시 농민 수익을 높이기 위한 수입 농산물 반대가 아니라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농민의 재난을 직시할 것과 이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요구하는 외침이었다. ‘쓰레기’를 보고 싶지 않고 이를 기피 시설로 몰아내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빗장 공동체를 만들어 온 대도시 시민들의 안온한 삶 뒤에는 매일 먹는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재난이 있고, 에어컨의 열기가 빠져나가는 높은 건물 뒤에서 빈곤층이 경험하는 온열 재난이 있다. 연결되어 있는 일상 속에서 기후 문제를 숙고하는 공론장을 만드는 보도가 좀 더 필요하다. 기후를 사회 문제화하고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문제로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더 많은 보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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