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운영 日기업, 다른 탄광 노역 피해 손배 패소(종합)
원고 9명 중 6명에 최대 위자료 1억 지급 판결, 3명은 기각
소송 앞서 별세한 피해자는 직접 탄광 징용 수기 펴내기도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유네스코 유산 지정 논란이 인 사도광산을 운영한 일본 전범기업이 다른 탄광에서 고초를 겪은 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광주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유상호 부장판사)는 27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9명이 미씨비시그룹 계열사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 주식회사)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6명에 대해서는 전부 또는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피고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 유족 9명 중 6명에게 각기 위자료 최소 1666만6666원~최대 1억원씩 총 4억9200여 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나머지 원고의 청구는 기각한다'고 주문했다.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광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현지에는 27개 사업장을, 한반도 전역에 탄광 37곳과 군수공장을 운영했던 전범 기업이었다.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돼 공분을 일으킨 군함도 하시마 탄광(2015년 등재), 사도광산(올해 등재)도 미쓰비시광업의 대표 사업장이었다.
일제 패망 이후 해체됐던 미쓰비시 그룹은 1950년대 단계적으로 재결합했고, 옛 미쓰비시광업은 현재 미쓰비시 머터리얼 상사로 기업의 명맥을 잇고 있다.
고인이 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에 의해 끌려가거나 회유에 속아 일본 현지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사업장(가미야마다·아케노베·오사리자와 탄광, 사키토 광업소) 등지에서 고된 노역을 했다.
이들 모두 탄광에서 하루 2~3교대 고달픈 육체노동을 하고 학대와 구타, 차별을 감당해야 했다. 콩밥과 무말랭이, 단무지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식사로 배고픔에 시달렸고 임금도 거의 받지 못했다.
피해자 중 1명은 1945년 1월 탄광이 무너져 숨졌고 해방 이후 귀국한 동료가 유해를 수습, 고국 선산에 안장되기도 했다. 피해자들 상당수는 탄광 붕괴 사고로 허리·다리를 다치거나 우울증·신경 장애, 청력 상실 등의 후유증을 겪으며 광복 이후 귀국한 여생도 고통 속에서 보내다 사망했다.
피고 측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일본에 있는 법인으로서 한국 내 사업소·영업소가 없으며 일본 정부의 동원 권한 행사에 관여하거나 활동한 사실도 전혀 없다. 한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존재하지 않다. 또 1965년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피고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돼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침략 전쟁 수행 과정에서 기간 군수산업체인 광업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자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한 사실, 당시 미쓰비시 광업이 일본 정부의 동원 정책에 적극 편승해 인력을 확충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노동 내용, 강도, 환경 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에 의해 연행됐다.강제연행이 아닌 경우에도, 속여서 모집했고 모집 후에는 임의 귀환이 불가능했다. 장기간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한 처우를 당하며 강제로 노동에 종사했다"며 강제 연행이 아닌 동원 사실 역시 심각한 불법행위라고 봤다.
다만 나머지 원고 3명이 낸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일부 원고는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상속 채권의 고유 위자료를 소멸시효 이후에 청구했다. 나머지 원고 2명이 제출한 자료 만으로는 숨진 피해자들이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각 사업장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거나 입증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특히 이날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은 원고 이씨의 아버지였던 고(故) 이상업 선생(2017년 별세)은 생전 자신의 징용수기를 책으로 남겼다.
그가 지원단체 등의 도움으로 펴낸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는 한국어·일어판으로 펴내며 반향을 일으켰다.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에서 강제 노역할 당시 겪었던 경험들을 직접 그린 연필 스케치 그림을 책에 담기도 했다.
앞서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심의·결정통지서 심의 조서' 등을 근거로 유족과 함께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월 접수된 이번 소송은 소장 국제 송달 등 문제로 4년8개월째 공전하다, 이날 1심 선고가 났다.
앞서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승소 판결 이후 광주에서는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의 지원으로 잇따라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대부분 승소하고 있다.
현재 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스미세키홀딩스 등 6개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항소심 중이다.
이날 선고가 난 재판을 제외하면, 일본 기업에 대한 8건의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심리 중이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 기업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홋카이도탄광기선(도산), 일본제철 등 8개 기업이다.
이번 소송의 법률대리인이었던 최정희 변호사는 선고 직후 "원고 대부분의 청구가 인용됐지만 기각된 원고 3명에 대해서는 강제동원 사실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항소도 검토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피해자들이 '일본 제국 신민으로서 고생은 했지만, 불법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닌 합법적인 노동이었다'는 취지로 줄곧 주장하고만 있다"면서 "이번 소송은 원고가 사도광산 피해자는 아니지만, 대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광업에 대한 사법적 단죄로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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