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교토국제고의 기적
최근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대회인 고시엔에서 교토국제고가 우승해 화제다. 교토국제고의 우승 소식도 놀랍지만, 고시엔이라는 고등학교 야구대회가 그 정도로 주목받는 것도 우리 젊은 세대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야구대회는 누가 우승을 하건 거의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야구가 큰 관심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 야구선수들의 열정을 표현한 일본 청춘만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도 있었다. 이번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 이슈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중년 세대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개발 시기 한국에선 거대한 이촌향도의 물결이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한 것이다.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을 테마로 한 엄청난 시장이 탄생했다. 가요계에서 고향 코드를 대표하면서 국민가수로 떠오른 이가 바로 나훈아다. 운동계에선 고등학교 야구가 바로 고향을 대표하는 종목이었다.
경북고, 광주일고, 선린상고, 경남고, 군산상고, 대구상고, 부산고, 인천고, 동산고, 중앙고, 덕수상고, 신일고, 충암고, 북일고 등 많은 학교들이 스타선수를 배출하며 국민적 성원 속에 열전을 벌였다. 이촌향도의 고향정서뿐만이 아니라 지역 간 경쟁심리도 고등학교 야구에 투영되면서 고교야구 스타는 국민적 인지도를 누렸다.
1972년 군산상고가 부산고에 1-4로 뒤지다 9회 말 4점을 뽑아내며 역전승해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고 불리게 된 황금사자기 결승전이라든가, 1981년 박노준-김건우의 선린상고가 성준-류중일의 경북고에게 박노준의 다리 부상 등으로 패하면서 비운의 팀이 된 사건 등 많은 명승부가 당시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다.
고교 야구대회 경기가 열리는 날엔 타 지역에서 원정 응원단까지 몰려들었고 암표상들이 진을 쳤다고 한다. 스타이니만큼 '오빠부대'도 물론 나타났다. 그랬던 고교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 출범 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젠 프로야구팀이 각 지역을 대표한다.
놀랍게도 일본에선 프로야구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고교야구의 인기가 살아남았는데 그게 바로 고시엔의 열기다. 일본 3700여 고등학교의 야구팀이 열망하는 게 바로 고시엔인데, 올해는 그중에 단 49팀만 본선에 올랐다. 고시엔 본선 진출만 해도 선수에겐 평생의 영광으로 남는다.
NHK가 고시엔 본선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지난해 결승전 시청률은 무려 20%를 돌파했다. 우승팀이 결정되면 즉시 포털에 속보가 뜨고 일부 신문은 호외를 발행한다. 가히 국민적 관심사인 것이다.
올해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특히 화제인 건 이 학교가 과거 민족학교였기 때문이다. 재일교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1947년에 설립한 민단 산하 교토조선중이 전신으로 지금은 일본의 일반학교가 됐지만 교가는 여전히 한국어다.
야구부 기숙사 입구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있고, 교실엔 태극기와 애국가 그리고 한국어 교가 등이 걸려있다. 홍익인간 휘호까지 걸렸다. 고시엔 본선에서 승리하면 교가가 울려 퍼지고 그 장면이 NHK로 생중계된다. 당연히 올해 결승 직후에도 한국어 교가가 NHK 전파를 탔다. 그래서 일본 일각에서 혐한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일본에서도 축하하는 분위기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고교야구엔 아직도 지역 대표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교토 지역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교토국제고 운동장이 너무 작아 정상적인 훈련을 할 수 없었고, 돈이 없어 찢어진 공을 테이프로 붙여가며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았다.
국내 기아 프로야구단이 일본에 전지훈련 갔을 때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동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야구공 1000개를 선물했고, 그 공으로 훈련해 이번에 우승까지 했다는 사연도 화제가 됐다. 여러 모로 감동적인 청춘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이 학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재일교포 민단의 민족학교가 아닌 일본의 일반학교다. 학생들, 야구부원들도 대부분 일본인이다. 그러므로 '재일교포가 역경을 이겨냈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민족감정을 대입시킬 일은 아니다. 국적, 민족과 상관없이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학생들이 악조건을 이겨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어쨌든 일본 땅 안에서 한국어 교가, 태극기 등을 지켜가는 작은 학교가 그 어렵다는 고시엔 우승을 했으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희진, 어도어 대표직서 물러난다…"뉴진스 프로듀싱은 계속"
- `월 1200만원` 배달기사, `신호위반 버스`에 치여 끝내 사망
- `게이 펭귄 커플` 한 마리 죽자, 연인 깊은 애도…누리꾼들 울렸다
- `합의 성관계` 후 "성폭행 당했다" 신고한 30대 여성…징역형 집행유예
- "앗, 내 차 아니었어?"…잠깐 산책하고 왔더니 차가 사라졌다, 황당사연
- 미국서 자리 굳힌 SK바이오팜, `뇌전증약` 아시아 공략 채비 마쳤다
- 한화, 군함 앞세워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확장
-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노골화하는데 싸움만 일삼는 정치권
- “실적·비전에 갈린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표심 향방 ‘촉각’
- "내년 韓 경제 성장률 2.0% 전망… 수출 증가세 둔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