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송두환 인권위의 ‘마지막 회의’
인권 보호는 인권위 설립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보편적 인권은 정부 정책이나 사회 주류가 생각하는 국익과 종종 충돌한다. 그럴 때 단호하게 인권 편을 들라고 2001년 만든 독립적 국가기관이 인권위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지지 방침을 내놓은 뒤 인권위가 “우리는 이라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 단적인 예다.
인권위는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대체로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위상이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직속기구화를 시도했고, 노무현 정부 때 90% 안팎이던 인권위 권고 수용률도 2009년 67%로 내려갔다. 그래도 요즘처럼 인권위가 나락으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용원 상임위원과 여당이 지명한 이충상 상임위원의 독선과 기행으로 인권위는 장기 파행 중이다. 인권위원이 항의 방문한 군 사망자 유족들을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수사의뢰하는 해괴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유엔이 인권위원의 인권 탄압을 우려하고, 국민이 인권위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지난 26일 인권위 전원위원회가 두 달 만에 열렸다. 김·이 상임위원이 주도한 6인 보이콧에 동참하던 강정혜 인권위원이 참석해 겨우 정족수를 채웠다. 이 회의는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주재한 전원위였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9월 취임한 송 위원장 임기는 다음달 3일까지다. 송 위원장은 “오늘 참석하지 않은 다섯 분의 빈자리가 눈에 보인다”며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후임 위원장이 합리적 토론과 운영의 질서를 잘 세워주기 바란다”고 했다. 2000년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인권위 설립에 힘을 보탰던 송 위원장의 퇴임 소회이자, 마지막 당부였다.
윤 대통령은 송 위원장 후임으로 공안검사 출신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터다. 안 후보자는 갖은 혐오 표현을 써가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해온 인물이다. 인권위와 정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을 지명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기력해지는 인권위, 그 위에 낀 먹구름이 언제 걷힐지 한숨이 터진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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