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번져가는 딥페이크 범죄, 온 사회가 팔 걷고 나서야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직업·지역·학교별로 세분화된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통돼온 걸로 드러났다.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딥페이크 범죄 대상이 된 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우려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번져나갈 때까지 정부와 우리 사회가 무얼 했는지 통탄을 금할 길 없다.
지난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성들이 직접 제보를 취합해 만든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 학교 명단이 공개됐다. 초등학교까지 포함해 200여곳에 달했다. 여성 군인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대화방이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현역 군인임을 인증해야 들어갈 수 있는 이 대화방 참가자는 한때 9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900명 넘게 참여한 한 대화방에서는 여성 가족 구성원의 합성 성착취물을 올린 이도 있었다는 폭로도 올라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텔레그램 모니터링에 나섰고, 경찰청은 7개월간 특별집중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은 분노가 일고 한숨이 터질 뿐이다. ‘n번방’ 사태를 계기로 딥페이크 우려가 제기된 게 벌써 4년 전이다. 그럼에도 수사는 늘 뒷북이고, 가해자 대부분은 집행유예 판결에 그쳤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반년 넘게 장관이 공백인 식물부처로 전락했다. 오죽하면 이번에도 경찰이 아닌 여성들이 직접 나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명단을 만들고, 맘 졸이며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겠는가.
4년 전 n번방 사건 당시 국회·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딥페이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자기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다”는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인공지능(AI) 생성물에 ‘워터마크’ 표지를 의무적으로 넣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제 막 태동하는 AI 산업 발달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폐기됐다. 정부와 국회의 해태가 쌓여 지금의 참담한 현실을 만든 것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고 2차·3차 피해를 일으킨다.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사·처벌 강화뿐 아니라, AI 기술 악용의 경계심을 높이고, 올바른 성평등 교육까지 온 사회가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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