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테니스 트렌드’ 리더 US오픈 ①[박준용의 인앤아웃]
시즌 그랜드슬램의 대미를 장식할 US오픈이 오는 26일부터 빌리 진 킹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열린다. US오픈은 4대 그랜드슬램 중 최다 상금 규모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센터코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전 세계 코트 중 최대 규모로 약 2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변화에 인색하고 보수적인 세계 테니스 무대에서 US오픈은 아직도 흰색 옷 등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윔블던과 완전히 상반된 행보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각종 최초의 타이틀 보유하고 다. 이 때문에 US오픈은 세계 테니스의 트렌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그랜드슬램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 US오픈만의 매력과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US오픈이 세계 테니스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자.
# 4대 그랜드슬램 중 최다 상금
세계 테니스 대회 중 가장 등급이 높은 대회는 1년에 네 차례 열리는 그랜드슬램이다. 이 중 US오픈 상금 규모는 다른 그랜드슬램을 압도한다.
올해 US오픈 총상금은 지난해보다 15.38%로 인상된 7천5백만달러(약 1천3억원)로 단식 우승 상금은 360만달러(약 48억 1천만원)로 역대 4대 그랜드슬램 중 최다 규모다. 1회전 탈락해도 10만달러(약 1억 3천만원)를 거머쥘 수 있다.
# 세계 최대 규모의 아서 애시 스타디움
US오픈의 센터코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약 2만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테니스장이다. 대회 조직위는 미국 테니스의 영웅이자 흑인 선수 최초로 호주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우승한 아서 애시의 이름 따 경기장 이름을 지었다. 2억5천4백만달러를 들여 1997년에 개장한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는 90개의 스위트룸, 5개의 식당, 2층 규모의 선수 라운지가 있으며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남자단식 결승이 5년 연속 비 때문에 다음날로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대회 조직위는 2013년과 2014년 남자단식 결승을 아예 월요일 밤에 개최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회 기간이 14일이 아닌 15일이었다. 2016년에 지붕이 설치되면서 대회 기간은 다시 14일로 돌아왔다.
이밖에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e스포츠, 프로레슬링 대회 등 다목적 구장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에는 진료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 최초의 상금 평등화
US오픈의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남녀 상금 평등화’다. 현재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이하 ATP)와 여자테니스협회(이하 WTA) 투어대회의 상금은 다르지만 국제테니스연맹(이하 ITF)가 주관하는 4대 그랜드슬램의 남녀 상금은 동일하다. 4대 그랜드슬램 중 남녀 상금 평등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대회가 바로 US오픈이다.
지난 1972년 빌리 진 킹(미국)이 US오픈 여자단식 우승 당시 상금은 1만달러로 남자 우승 상금 2만5천달러보다 적었다. 이에 빌리 진 킹은 상금 평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듬해 대회 출전을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이에 US오픈은 1973년 4대 그랜드슬램 중 최초로 남녀 상금 동일화를 결정하였다. 이후 빌리 진 킹 중심으로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이상 미국),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 등 많은 여자 톱랭커 선수들이 남녀 상금 평등화를 주장한 끝에 호주오픈은 2001년, 프랑스오픈은 2006년, 윔블던은 2007년에 남녀 상금 평등화가 각각 이루어졌다. US오픈 이후 4대 그랜드슬램 모두 남녀 상금 평등화가 실현되는데 무려 34년이 걸린 것이다. 그랜드슬램의 남녀 상금 평등화는 세계 스포츠사에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데 그 첫 단추가 바로 US오픈으로 지난해가 US오픈 남녀 상금 평등화 50주년이었다.
# 그랜드슬램 최초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와 샷클락 도입
현재 흔히 사용되고 있는 스코어링 시스템 ‘타이브레이크’는 1965년 제임스 반 알렌이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처음 도입하였다. 하지만 당시 전통적인 스코어링에 익숙한 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타이브레이크가 도입된 결정적 경기가 있었으니 바로 1969년 판초 곤잘레스(미국)와 찰리 파사렐(이상 미국)의 윔블던 1회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무려 5시간 12분 혈투 끝에 곤잘레스가 22-24 1-6 16-14 6-3 11-9로 승리했지만 선수들에게는 후유증이 컸다.
이 모습을 지켜본 US오픈 조직위는 경기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듬해 US오픈에 그랜드슬램 최초로 모든 세트에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US오픈을 제외한 다른 그랜드슬램은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 도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2010년 존 이스너(미국)와 니콜라스 마휘(프랑스)의 윔블던 1회전은 무려 2박 3일, 경기 시간만 11시간 5분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후에도 종종 마라톤 매치가 벌어지며 선수들의 원성을 샀지만 다른 그랜드슬램은 타이브레이크 도입에 무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종목에 불어닥친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지 못하며 호주오픈과 윔블던은 2019년 마지막 세트에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하였다. 차이가 있다면 호주오픈은 마지막 세트 게임 스코어 6-6에서 7점제 타이브레이크, 윔블던은 마지막 세트 게임스코어 12-12에서 12점제 타이브레이크를 적용하였다. 2022년 그랜드슬램 조직위가 모든 그랜드슬램 마지막 세트에 10점제 타이브레이크 도입을 발표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롤랑가로스도 어쩔 수 없이(?) 적용하게 됐다.
또한, US오픈은 2018년 포인트가 끝난 후 25초 내에 서브를 넣어야 하는 샷클락을 그랜드슬램 최초로 도입했다. 사실, 과거에도 샷클락은 존재한 규정이었지만 체어 엄파이어가 재량으로 적용하다보니 일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코트 내에 샷클락을 나타내는 전광판을 설치하면서 동등하게 샷클락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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