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겐 ‘참아라’ 국회엔 ‘참견 말라’…의료공백, 눈 감고 손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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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가 6개월째 이어지지만, 의대 증원안 시행으로 상황을 촉발한 정부는 뚜렷한 대책 없이 '고통 감내'만 요구하고 있다.
'의료 대란'을 겪는 각계의 원성엔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며 귀를 막고, 정치권의 중재 움직임엔 "정부가 근거를 갖고 하는 일에 국회가 왜 나서냐"며 눈을 부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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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가 6개월째 이어지지만, 의대 증원안 시행으로 상황을 촉발한 정부는 뚜렷한 대책 없이 ‘고통 감내’만 요구하고 있다. ‘의료 대란’을 겪는 각계의 원성엔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며 귀를 막고, 정치권의 중재 움직임엔 “정부가 근거를 갖고 하는 일에 국회가 왜 나서냐”며 눈을 부라린다. 국민 불안이 커지자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는 흐름이다.
2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따른 의료 공백 심화 우려에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고통스러운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에는 당연히 고통이 뒤따르는 만큼, 의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을 감내하면서 의대 증원을 계속 밀고나가겠다는 뜻이다. 한 총리는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료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당장은)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가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의 발언은 “(의료인력 수급 문제는) 정부가 근거를 갖고 책임 있게 결정해야지, 국회가 법으로 정하거나 의료계와 협상해서 아무런 근거 없이 결정해선 안 된다”는 전날 대통령실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응급실 단축 운영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대해서도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안’에 대해선 정부와 대통령실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총리는 “(한 대표 제안을) 검토해봤는데 ‘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증원 계획을 건드릴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변한 게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정부와 대통령실의 완강한 태도에 곤혹스러워진 건 여당이다. 새 지도부 선출을 통해 가까스로 끌어올린 당 지지율 추이가 심상찮은 데다, 추석 연휴를 거치며 악화된 밥상머리 여론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어서다. 누구보다 다급한 건 한동훈 대표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막힌 정국을 풀어보겠다며 ‘의-정 중재역’을 자임했지만 대통령실로부터 ‘여당 대표답게 행동하라’고 핀잔만 들은 모양새가 된 탓이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이날 기자들에게 “용산은 지금 (의료계와) 대화 단절이다. (당이)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한 대표의 행보에 힘을 싣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정치권의 중재 움직임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치권이 중재를 하더라도 뒷북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갈등 초기에 증원 규모를 줄인 중재안을 들고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지만 너무 늦었다”고 했다. ‘국민 건강을 인질 삼아 밥그릇을 지켜려 한다’는 따가운 시선 속에 반년 넘게 버텨온 의사들로선 ‘증원 규모’를 건드리지 않는 한 쉽게 물러설 리 없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이 늦춰질수록 높아지는 건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한겨레에 “이걸 당정 갈등이나 정쟁 프레임으로 봐선 곤란하다.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대통령의 아집으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벌써 7개월째다.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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