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구원투수 등판 100일…“묵묵히 기본으로” 조용한 변화에 주목 [김민지의 칩만사!]
대외활동 자제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
하반기 실적 개선으로 성과 보여줘야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기본’ ‘열심’ ‘묵묵히’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원투수로서 DS(반도체)부문장으로 취임한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그간 전 부회장은 대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DS부문 실적 개선 및 조직 쇄신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에게는 반도체의 ‘기본’인 기술력 향상에 집중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 부회장 취임 후 100일간 반도체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4세대 제품인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AMD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에 집중한 SK하이닉스와 달리 고객사 다양화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여기에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는 범용 D램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전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삼성전자는 구겼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엿보겠습니다.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 5월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DS부문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오는 28일 취임 100일차를 맞습니다.
취임 당시 그는 이렇다 할 취임식도 없이 바로 업무에 몰두했습니다. 취임사도 참 간결했습니다.
“부동의 1위 메모리 사업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은 선두 업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시스템LSI 사업도 고전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저를 비롯한 DS 경영진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어려움을 극복할 방안을 반드시 찾겠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은 겁니다. 동시에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며 직원들을 다독인 셈입니다.
또한, 사기가 떨어져 있는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삼성 반도체는 숱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그 어느 회사보다 튼튼한 기술적 자산을 갖게 됐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고 뛰어난 연구 경험과 노하우도 축적돼 있다.” “반도체 고유의 소통과 토론의 문화를 이어간다면 얼마든지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주로 3가지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문화를 만들자”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주자” 입니다.
전 부회장에게 반도체의 기본은 기술력입니다. 그는 이달 들어 HBM과 첨단 패키징 조직을 대상으로 소규모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부문장 직속이었던 AVP(어드밴스트 패키징)개발팀을 사실상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TSP(테스트&시스템패키지)총괄과 HBM개발팀으로 재배치 했습니다. 당장 SK하이닉스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 받는 HBM 기술력을 높이고, 향후 중요성이 커질 후공정 패키징 영역을 강화하려는 차원으로 보입니다.
그는 묵묵히 조용히 일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고 전해집니다. 소위 ‘호들갑 떨지 않고’ 일만 하는 정석적인 스타일이라는 평가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의 업무 스타일은 묵묵히 일만 하는 일벌레”라며 “지난 100일간 반도체의 기본을 강조하면서 대외 활동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취임 후 100일 동안 그는 딱 한번 공식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지난 5월 31일 열린 호암상 시상식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기자들의 여러가지 질문에도 “여러가지 두루 보고 있다” 정도로만 답하며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내에서도 직원들과 직접적인 소통에 나서기 보다는 흐트러진 조직 기강을 잡고 실적 개선을 위한 업무에 초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조직 문화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직원들도 일부 있습니다. 이전에는 ‘위톡(Wednesday Talk)’ 등 타운홀미팅 방식의 자리를 통해 대표이사가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 부회장은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뒤처진 반도체 기술력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지난 1일 첫 사내 메시지를 통해 “지금 DS 부문은 근원적 경쟁력 회복이라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부서 간 소통 장벽, 비현실적 계획 보고 문화 확산 등을 지목했습니다. 약 두달간 DS부문 전반을 두루 살펴본 후 문제 원인을 파악한 겁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신조직문화(C.O.R.E. 워크)’를 조직 전략으로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조직 간 시너지를 위해 소통(Communicate)하고, 직급·직책 상관없이 치열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Openly Discuss)하면서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Reveal)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를 결정·실행(Execute)한다는 뜻입니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전할 것은 과감히 도전하는 문화를 재건해야 한다는 셈입니다.
이제 조직 소통 문화 개선을 위한 세팅은 어느 정도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남은 3분기와 4분기에 전 부회장은 실적으로 이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행히 하반기 메모리 시장은 맑음으로 보입니다. 다만, HBM3E의 엔비디아 공급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AMD 등에 HBM3E 공급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엔비디아를 뚫지 못했습니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큰손 엔비디아에 HBM3E를 반드시 납품해야 합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제품인 HBM4에 1c D램(10나노급 6세대 D램) 적용을 추진하며 과감한 기술적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HBM3E 다음 라운드인 HBM4 제품에 집중해 승부수를 띄울 전망입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수율 개선과 고객사 확대가 시급합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2%로 1위, 삼성전자가 13%로 2위입니다. 무려 49%포인트 차이가 납니다. TSMC 독주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반기 3나노 2세대 공정 양산으로 격차를 줄일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올 들어 5나노 이하 선단 공정에서 꾸준히 수주량을 늘려오고 있습니다. 대형 빅테크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입니다.
연말 인사 시즌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이 쏠립니다. 일부 사업부장을 교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임원들에게 강도 높은 쇄신 주문을 하고 있는 만큼, 내부 긴장감도 상승하는 분위기입니다. 삼성 특유의 ‘신상필벌’ 원칙이 적용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동시에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하반기 영업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려 내년 초 연봉의 40% 이상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보입니다. DS부문의 올해 하반기 영업이익률은 30% 이상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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