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티다 줄사표…"응급의료 이미 붕괴" 추석 앞두고 비상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잇따라 사직하고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의료공백 위기감이 커졌다. 의료현장에선 이미 응급의료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응급의학과와 배후진료과의 지원을 늘리고 의사들이 의료사고 위험을 지도록 한 제도 등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전원이 극심한 피로와 심적 부담을 호소하며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7명이 사표를 냈고 3명은 사직서가 수리됐다. 부산 상급종합병원인 동아대병원은 응급실 39병상 중 11병상만 운영 중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응급실 근무인력이 줄면서 의료진 소진이 커졌고 이에 부담이 커진 전문의들이 사직서를 내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말 1418명에서 이달 초 1502명으로 늘었지만 응급실 근무 전공의는 500여명 이탈했다. 한 수도권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인력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업무 부담감이 커지고 피로감이 커지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사직이 늘어난 것"이라며 "응급환자를 배후진료과에 연계해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업무 부담이 더 커져 상황이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시스템 붕괴 선언도 나왔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의료 붕괴는 이미 확정이고 되돌릴 수 없다"며 "병원들이 위기상황에 처해있는데 정부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현실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내놓은 몇가지 대책으로 호전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사과와 반성부터 하고 의료계나 의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현장에선 응급의학과, 배후진료과 지원과 응급의료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응급실 근무자 지원, 보조인력 채용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배후진료가 약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고생하는 것으로, 응급의료시스템 자체를 배후진료 포함 모든 과 전문의들이 같이 모여 당직을 서는 등으로 해결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이 경증 외래환자를 보느라 시간 뺏기는 구조를 바꿔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경증환자는 일차의료를 강화해 가벼운 질환은 주치의에 상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야간 경증환자를 위해 24시간 전화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의원들이 동네 당직을 서는 등의 형태로 일차의료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견해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 인력이 필수의료로 유인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점점 나빠지기만 하다가 의정갈등 사태 이후 악화돼 인력이 유입될 희망이 없다"며 "야간에 일하고 위험부담이 있고 체력적으로 힘든데 그만큼 유인책이 없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개원가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경증환자의 본인부담분을 인상했는데 경증환자를 어떻게 보지 않을지, 어디로 보낼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며 "경증환자를 위한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고 봤다.
정부와 전공의들이 한발씩 양보해 지금의 의정갈등 사태를 끝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의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는 2026년도 의대정원 숫자에 매여 있고 의사들도 2025년도 의대증원 취소, 필수의료패키지 전면 백지화 등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강대강으로 대치하며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양측이 사태를 빨리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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