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정신이 디지털에 업로드, 그런 세상 소설에 담아"
유발 하라리에 영감 받고
인지신경학·딥러닝 취재
가상세계 배경 인간 다뤄
반전 거듭하는 마력의 문장
예약판매로만 베스트셀러에
정유정 작가(58)는 출판계 '은둔의 블루칩'이다. 2년, 3년 주기로 신작을 내는데, 쓰는 책마다 최소 수십만 부가 팔려나가고, 책 출간 후 3개월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나머지는 칩거하기 때문이다. 이번 책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펴냄)은 비밀스러운 거장의 걸작이다. 정식 출간 전 주요 서점 '예판(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휩쓰는 중이다. 27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정유정 작가는 '유발 하라리'로 긴 대화를 열었다.
"하라리의 책 '호모 데우스'를 보면 인간이 궁극엔 데이터화되리란 물음을 던지잖아요. 이번 책에선 '인간이 업로드되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생명이란 유한해 한줌의 재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을 욕망한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이 불멸하는 시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으로의 출입권을 주고받거나 심지어 매매까지 가능하다면? 신간 '영원의 천국'은 저 질문을 눈앞에 펼쳐보인다.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장소. 삶에 관한 모든 욕망이 '용해'되는 세상이다.
중심인물은 우선 '해상'과 '제이'로, 해상은 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렸다. 제이는 해상에게 가상세계 설계법을 가르친다. 살고자 하는 영원성의 욕망, 아니 정확히는 제한된 삶을 이겨내려는 욕망이 '영원한 천국'의 주제다. 정 작가의 작법은, 그러나 간단치가 않다. 반전을 거듭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소설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마력의 문장이다.
"견디고 맞서고, 자기 안의 그 욕망을 깨워야 진정한 가치가 뭔지를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았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에 이른 건 그 욕망을 내재했던 긴 역사 때문이었어요."
'혹독한 환경, 주어진 조건을 이겨내려는 욕망'은 어떤 모습일까. 그 욕망의 양가성을 증명하기 위해 정 작가는 유빙과 사막을 여행했다. '얼음과 태양'이 책 속에서 대비를 이룬다.
"지극히 차가운 홋카이도의 유빙지대, 그리고 태양이 작렬하는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을 다녀왔어요. 유빙이 서로 부딪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마음을 깨버리는 소리라고 느껴서 소설에 담았습니다. 바하리야 사막은 어린왕자가 사막여우를 만난 장소인데, 이곳은 과거 거대한 바다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말라 있는 곳이에요. 몸이 마비가 된 인물 해상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어요."
뒤엉키고 긴장이 고조되다가 실타래가 풀릴 때쯤 '역시 정유정'이란 감탄이 온다. 촘촘하고 세밀한 소설은 탄탄한 취재에 기반한다. 유발 하라리와 함께 심리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을 오래 들여다봤고 인지신경학, 딥러닝을 취재해 이번 책이 나왔다.
소설에 언급되듯이 '인간이 데이터화되는 세상'은 정말로 올까.
"인간은 기어코 그런 시대를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취재 과정에서 느껴졌어요. 이번 책은 상상이지만 결국엔 자기만의 가상극장 안에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는 한국의 대표 스릴러 작가로 악의 3부작('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 분야를 평정했다. 적수가 없다. '7년의 밤'은 장동건·류승룡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번 책은 정유정 작가의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책을 이룬다.
정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파괴적 욕망'과 '성취적 욕망' 사이에서의 길항으로 본다. "파괴적 욕망을 소설로 쓰면 나 자신이 파괴되는 것 같아져요. 그래서 성취적 욕망으로 눈을 돌리는데 그러면 또 삶이 달달하고 느끼해지잖아요. 다시 타인을 파멸로 몰아보고 싶어지고요. 그 극단을 오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에 내재된 욕망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기 때문에 책을 읽고, 힘있는 소설로 그 욕구를 충족하는데, 책은 생의 매뉴얼이 되기도 해요. 인간으로서의 유희가, 또 생의 매뉴얼이 없었다면 인간은 사바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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