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단결’로 번역했다···아리셀 유족 곁 지킨 통역사가 느낀 건

박채연 기자 2024. 8. 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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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이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아리셀 참사와 관련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6월24일 경기 화성의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형 참사가 할퀸 자리에 드러난 건 한국 제조업 노동시장의 ‘깊은 어둠’이었다. 한국 사회는 공단에 만연한 불법파견과 ‘위험의 이주화’의 민낯을 목도했다. 참사로 희생된 23명 중 17명이 중국 동포 노동자였다.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연구소가 주최한 집담회를 진행하던 중 참사 소식을 들었다. 사고 초기에는 시신의 신원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속속 화성에 도착한 중국 동포들은 자신이 유가족이 될지, 생존자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채였다. 중국 선양 출신 동포 5세이자 이주민 연구자·활동가이기도 한 박 소장에게 “정보라도 좀 정리해보자”는 연락이 닿았다.

그길로 화성으로 향한 박 소장은 지금까지 유가족들의 통역사를 맡고 있다. 참사 후 두 달 째 유가족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는 박 소장은 “아리셀 화성 참사는 한국 사회에 이주민 차별이 실재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면서도 “이번 사건을 그들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한국 노동환경의 문제”라고 했다. 박 소장을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경계인의몫소리 연구소 사무실에 지난 25일 아리셀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참사 후 그의 첫 통역은 유가족들과 ‘아리셀 중대재해사고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의 첫 대면 자리였다. 한국에서 살아 온 유가족은 한국어를 잘 구사했지만, 중국에서 온 유가족들은 통역이 필요했다. 박 소장은 “자리에 모인 열댓 가정이 희생자와의 관계와 사연을 전하는데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유족과 함께하며 그는 스스로 “편향적인 통역사”가 되기로 했다. 통역이란 원래 “오바하지 않고 정제된 감정으로 말만 옮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사의 상처를 가까이서 접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뭔가를 표현하려고 해도 황망하고 언어를 상실한 상태라고 판단했다”며 “담담하게 내용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울분, 분노, 절망까지도 고스란히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말씀하다가 목이 메여 울음을 터뜨리면 정부를 향한 질타, 행정을 향한 질타 등 생략된 언어도 옮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함께하고, 대놓고 여러분들의 편에 서서 편향적인 통역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은 그를 ‘명예 유가족’이라고 부른다.

박 소장은 최근 화성으로 향한 시민들의 연대 캠페인인 ‘아리셀 희망버스’의 손수건 문구도 ‘초월 번역’했다. ‘희망버스’를 ‘단결버스’로 번역한 것이다. 계기는 한 유가족의 이야기였다. 유족은 박 소장에게 ‘우리가 무슨 희망이 있냐. 우리 다 산송장 같은데 희망 말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연대를 갈구한다는 것을 눈치챈 박 소장은 중국어로 잘 쓰지 않는 ‘연대’ 대신 ‘단결’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그는 “사실 전화를 준 유가족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외국 사람으로 정의하고 한국 사람들과의 연대를 갈구하는 것은 아직도 그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희망’이 ‘연대’와 ‘단결’로 번역된 것처럼, 유가족들이 사용하는 단어도 시간이 가면서 변해 갔다. 초기엔 ‘동포’ ‘한민족’ ‘독립운동 후손’과 같은 민족을 강조하며 도움을 호소했다면, 시간이 지나선 중국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연대’나 ‘끝까지 싸우겠다’ ‘동지’ 등의 단어를 통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게 됐다고 박 소장은 말했다.

‘아리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추모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탑승 인원 체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소장은 유가족을 도우며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이주노동자 차별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만약 희생자가 모두 내국인 노동자였다면’이라는 가정을 그는 자주 떠올린다. 그는 “모두 내국인이었다면 정부와 시청 등 국가 행정이 희생자들에게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을까”라며 “제대로 교섭에 임하지 않는 아리셀도 이들이 이주노동자라 흩어지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사 작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했다. 참사가 생긴 지 두 달이 지나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진 것은 물론, 사건 초기에도 다른 사건들에 비해 주목도가 크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소장에게 이번 참사는 이주인권의 문제이면서 한국의 노동 환경의 문제다. 그는 “희생자들 다수가 이주노동자임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그들이 대상화가 될 수도 있고 더 많은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희생자 중 한국인 선주민 희생자도 있기도 할뿐더러 결국 국적에 관계없이 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이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아리셀 참사와 관련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많은 유가족이 귀국하면서 현재 박 소장의 통역 일은 많이 줄었다. 지금 그는 아리셀 참사를 어떻게 알리고 정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 14일엔 ‘동포와 이주인권운동 같이 갈 수 없을까’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진행했고, 오는 30일엔 이주민과 노조의 접점을 찾는 토론회를 주관한다. 유가족들이 고용노동부나 박순관 아리셀 대표 자택, 에스코넥(아리셀의 모기업) 등을 다니는 데 드는 버스 대절비용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투쟁을 위해 타고 다니는 그 버스 자체가 희망버스”라고 했다.

박 소장은 고민한다. 이주민을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지만, 환대의 필요성을 설득하다 보면 때로 ‘쓸모의 논리’에 기대게 되기도 한다. “유가족들의 말에도 ‘세금 꼬박꼬박 냈다’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해왔다’ 등이 많았는데 서글펐다. 이주민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필요와 쓸모를 전제해야만 안전하게,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가.”

그럴수록 다시, 원론으로 돌아온다. “뻔한 말”이고 “언어의 빈곤을 탓하게 된다”면서도, 필요한 건 원론이다. 박 소장은 “이주노동자나 내국인 노동자 같은 대상화 없이 포괄적으로 갈 수 있는 정체성의 탄생을 바란다”고 했다.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으로 존재하지만 몫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알리고 가시화시키겠다”는 것이 박 소장의 다짐이다.


☞ [르포] 화성으로 향한 2500개 마음들···‘진심 어린 사과만이 진실 여는 첫걸음’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8181531001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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