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미 있는 제도를 왜 또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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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법안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국회에는 이미 시급한 법안 통과를 위해 만들어진 패스트트랙 제도가 존재한다.
쟁점 법안들을 두고 여야 정쟁이 심화되면서 다른 민생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민생 법안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면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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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법안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내용이다. 대통령실에서도 가칭 ‘민생 입법 신속 통과제도’를 만들자며 여기에 힘을 실었다. 국회에서 정쟁이 일상화되며 민생 법안이 뒷순위로 밀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여야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들은 특별위원회 등에서 따로 처리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국회에는 이미 시급한 법안 통과를 위해 만들어진 패스트트랙 제도가 존재한다. 소위 ‘신속처리안건’으로 불리는 패스트트랙은 지난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국회법상 전체 의석(300석) 중 5분의 3(180석)의 찬성만 얻으면 복잡한 상임위원회 심사 등을 건너뛰고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이미 있는 제도를 또다시 만들자고 주장한 셈이다.
이같은 제안이 나온 경위도 이해는 된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석 달이 되어가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고작 8개뿐이다.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것들이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은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이미 행사했거나, 행사할 법안들이기도 하다. 쟁점 법안들을 두고 여야 정쟁이 심화되면서 다른 민생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법안 심사를 위한 소위원회조차 구성 못 한 상임위들도 있다.
그렇다고 ‘민생 법안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면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정쟁 법안과 민생 법안을 떼어놓는다 해도 법안에 대해 양당 혹은 의원들 간의 의견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무조건적으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국회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때가 아닐까 싶다. 여야는 오는 28일 민생 법안을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할 예정이다. 22대 국회가 문을 연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의견을 모았음에도 특검 정국에 휘말려 결국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민법 개정안(구하라법)과 전세사기특별법 등이 처리될 전망이다.
특히 전세사기특별법은 여야 의견 차가 컸던 법안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그동안 야당이 지적해 왔던 지점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고 야당이 이를 한발 물러서 수용하면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국회의원들 간에 진득한 논의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중요한 건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대화하는 의지가 아닐까. 정말 민생 법안이 시급하다면 여야 모두 한 발씩 물러나서 합의점을 찾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3년 만에 여야 당대표 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형식과 의제를 두고 진통 중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양당이 각자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해 싸우기보다는 서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협치의 물꼬를 트길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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