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부재중 전화’의 두려움 [한겨레 프리즘]

이정연 기자 2024. 8.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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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4일 오전 119구급대가 대전권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이정연 | 인구·복지팀장

창밖에 새어오는 햇빛에 눈을 뜬 날이었다. 알람 없이 평화롭게 아침을 맞았는데 이내 긴박해졌다. 핸드폰을 보니, 일어나기 30분 전쯤 전화가 한통 와 있었다. 부재중 전화의 발신인은 어머니였다. 잠기운은 삽시간에 달아났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에요?” 묻자, 어머니는 “아이고, 그 시간에 전활 걸어서 놀랄 줄 알았다. 잘못 눌려서 전화가 갔다”고 답하셨다.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질 않았지만, “응, 알겠어요.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요.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계획형 성향을 가진 나는 이 장면을 수없이 상상했다. 부모님께 사고가 생겨 서울에 사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일 말이다. 두분 모두 건강한 편이지만 아버지는 만성질환을 오래 안고 살아오신 터다. 상상해온 상황에 따르면, 부모님이 적절한 진료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부모님이 사시는 곳, 나의 고향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노령인구 비율이 높지만 의료인프라는 턱없이 열악하다. 응급의료기관도 마찬가지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 중증응급질환으로 찾을 수 있는 응급실은 주변에 없다. 의료 정책 분야를 맡으면서 더욱 소상히 알게 된 의료취약지 현실은 남 일이 아니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뺑뺑이’라 불리는 응급환자 재이송과 그에 따른 환자 사망 사례 등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인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반년 넘게 이어진 전공의 이탈이 응급의료체계에 심각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런 응급실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기에, 그동안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온라인 종합상황판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 상황판에선 지금 어디 응급의료기관이 어떤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 전화를 끊고, 바로 그 상황판을 확인했다. 부모님 거주지엔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있지만 중증응급질환을 볼 수 있는 의료기관은 없다. 가장 가까운 지역응급의료센터까지는 차로 30분, 그곳에서도 심혈관 중증응급질환 환자는 받지 않는다. 진료권역의 최상위 응급의료기관인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모두 차로 1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119에 신고하고, 구급차가 오고, 이송이 가능한지 확인해 출발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을 한참 넘는 시간이 걸릴 테다. 게다가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은 주간엔 대체로 거의 모든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하지만, 야간이나 휴일엔 몇몇 질환에 대해 진료제한 메시지가 뜨곤 한다.

지역 응급진료체계 문제는 난데없이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전북 지역에서 한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서 병원으로 수차례 재이송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해당 지역의 과거 기사를 살펴보니, 유사한 환자 사망 사례가 2019년에도 2022년에도 있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개혁에 나선다고 했다.

27일 정부는 ‘2025년 예산안’을 공개했다. 보건복지부는 ‘든든한 약자복지, 탄탄한 의료개혁 이행을 위한 집중 투자’를 제목으로 한 복지 분야 예산 설명자료를 냈다. 예산안과 설명자료를 종합하면, 정부는 의료개혁 ‘5대 중점’ 투자 방향을 설정했다. 여기에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분야 사업 예산이 포함된다. 세부 사업과 예산을 보면,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충 등 소아의료체계 강화에 힘을 줬다. 또 권역책임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 현대화에 1천억원을 들여 진료 역량을 높이겠다고 했다. 응급헬기도 1대 늘린다고 한다.

지역 의료전달체계의 중추인 ‘지역거점병원’ 분야엔 2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여기엔 41개 지방의료원·적십자병원에 한시 지원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렸다. 언 발에 눈 오줌도 못 되는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필수진료의 제공, 지역의료의 육성”에 이 정부가 강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책 의지와 재정 투자의 간극이 멀어도 너무 멀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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