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수명 [강석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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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 암법'에 서명하며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이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캘리코가 1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노화의 알파고'를 기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노화를 늦추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효과가 있는 물질도 여럿 찾았지만, 아직 사람에게서 입증되지 못했고 설사 효과가 있더라도 곰퍼츠 주기를 미미하게 늘리는 데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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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 암법’에 서명하며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이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꿈같은 일도 10년이 채 안 돼 성공시킨 미국의 과학기술이 아닌가. 그러나 지난 50여년 동안 암 연구자들은 암과의 전쟁에서 고전했고 상당수는 ‘암은 다세포동물의 숙명’이라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설사 암을 정복하더라도 기대수명이 4년 정도 늘어나는 게 고작이다. 어차피 70~80%는 암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죽기 때문이다. 사망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나이, 즉 몸의 노화 정도다. 30살을 기준(연간 사망률 0.1%)으로 대략 8년마다 사망률이 2배가 되는 패턴을 ‘곰퍼츠 법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수명을 늘리려면 노화 속도를 늦춰 사망률이 2배가 되는 주기를 늘려야 한다.
예를 들어 주기를 8년에서 50년으로 왕창 늘리면 기대수명(사망률이 0.5가 되는 시점 기준)은 100살에서 500살로 5배가 된다. ‘이 무슨 황당한 얘기냐?’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2013년 설립한 구글의 자회사 캘리코는 이런 청사진으로 투자를 받았다. 캘리코가 1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노화의 알파고’를 기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노화를 늦추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효과가 있는 물질도 여럿 찾았지만, 아직 사람에게서 입증되지 못했고 설사 효과가 있더라도 곰퍼츠 주기를 미미하게 늘리는 데 불과할 것이다. 다만 놀라운 발견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노화세포를 죽이는 물질인 세놀리틱의 발견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에는 기능은 하지 못하면서 죽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노화세포가 늘어나고 그 결과 늙는다. 게다가 노화세포는 주위 세포도 자기처럼 만드는 물질을 분비한다. 수년 전 세놀리틱이 실제 실험동물의 노화세포를 없애 회춘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너도나도 세놀리틱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폐경 후 여성을 대상으로 세놀리틱 2종을 투여해 뼈 손실을 비롯한 노화 관련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한 결과 2주 차에는 약간 효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20주 차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수명이 2~3년인 생쥐에게서의 결과가 사람에게서는 재현되지 않는 셈이다.
8월1일 노화 연구를 개척한 레너드 헤이플릭이 향년 96살로 별세했다. 헤이플릭은 1960년대 인간 배아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세포가 40~60번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해 노화는 세포 수준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몸의 노화는 환경요인으로 손상이 누적된 결과라고 믿었던 당시 그의 발견은 노화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흥미롭게도 헤이플릭은 노화를 늦춰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앞으로 노화 연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노년은 물론 필자처럼 중년인 사람도 덕을 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헤이플릭 박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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