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바로잡는다…9월부터 사실혼·양자 인정 위한 접수받아
위원회 결정받으면 혼인·입양신고 가능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채 자녀를 낳고 살던 A가 1948년 제주4·3사건으로 배우자만 남겨놓은 채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자녀는 큰아버지 호적으로 등재돼 살아오던 중 부모와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정정을 시도했으나 현행법상 불가능했다.
직계비속 남자 없이 집안의 호주였던 B는 4·3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집안에서는 호주 승계를 위해 입양신고없이 친척의 아들을 사후 양자로 선정해 호주승계와 제사를 이어왔으나 법적으로 양자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
제주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절차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이하 4·3실무위원회)는 오는 9월1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개정된 4·3특별법의 혼인·입양신고 특례에 따라 4·3 희생자와 사실혼 관계인 사실상의 배우자 또는 양자를 대상으로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신청을 받는다고 27일 밝혔다.
신청 자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혼인신고 특례는 4·3 당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었던 사람 본인 또는 그들 사이의 자녀 또는 손자녀가 신청할 수 있다. 입양신고 특례는 4·3 당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의 양자로 입양신고를 하지 못한 사람 본인이 신청할 수 있다.
도내 거주자는 주소지 기준의 행정시·읍면사무소·동주민센터로, 도외 국외 거주자는 제주도로 접수하면 된다.
이들의 신청이 접수되면 신청 사실이 유족과 이해관계인에게 통지되고, 이후 4·3실무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4·3위원회에서 배우자, 양자로 인정하는 결정이 이뤄진다. 신청인은 결정 내용을 토대로 가족관계등록관서에서 혼인·입양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결정에 따라 그간 사실혼 관계였던 부모의 혼인신고가 이뤄지면 희생자의 자녀 역시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친척의 자녀 등으로 등재돼 희생자의 유족이 될 수 없었던 왜곡된 가족관계를 바로잡게 되는 것이다.
실제 4·3 당시 제주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인·출생신고를 할 겨를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현재처럼 혼인·출생신고를 제때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관습적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늦게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4·3으로 갑작스럽게 부모가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면서 자녀들은 조부, 아버지의 형제, 먼 친척의 호적에 등록돼 가족관계가 어긋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또 집안에서 친척의 아들을 죽은 이의 사후 양자로 선정해 호주승계·제사 등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 대부분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유족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제주도는 “사실상의 혼인관계·양친자 관계에 관한 결정을 위해 희생자와의 신분관계를 소명할 수 있는 증빙자료는 증거의 진실성이 객관적으로 담보돼야 한다”면서 “보증서 등 단독 증빙자료만으로 그 증명력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4·3위원회는 제출된 증빙자료와 제출된 의견을 종합해 심의·의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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