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영화화 된 ‘한국이 싫어서’···한국은 지금도 비슷해서

김한솔 기자 2024. 8. 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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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제공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인 계나(고아성)는 한국이 싫다. 지긋지긋하다. 그는 식탁 의자를 뒤로 빼면 싱크대에 등이 닿을 만큼 좁은 집에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산다. 집이 있는 인천에서 서울 강남의 회사까지 통근하느라 매일 지옥철에서 4시간을 보낸다. 점심때는 과장님이 먹고 싶다는 ‘동태찌개’ 외에 다른 것을 먹을 자유가 없다. 겨울은 또 못 견디게 춥다. 계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이 불편하다. 계나는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떠나기로 한다.

28일 개봉하는 장건재 감독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발표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행했던 ‘헬조선’ ‘탈조선’ 담론을 청년의 시점에서 섬세하게 서술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제공

소설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상황은 지금 봐도 이질감이 없다. 계나의 부모는 평생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재건축 분담금을 낼 돈이 없다. 가능한 대출을 다 받고도 모자라 딸이 직장을 다니며 부은 적금을 깨서 보태주길 바란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동갑내기 남자친구는 아직 취직도 못 한 백수지만 초조해 보이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계나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남자친구의 가족들은 비싼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역시 청담동 일식당을 갈 걸 그랬나’ 같은 대화를 나눈다. 있는 힘껏 살아도 ‘중산층’이 되기는 더 힘들어진 사회, 어디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지점도 달라지는 상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소설 속 계나는 호주로 떠나지만, 영화에서는 뉴질랜드로 간다. 따뜻한 햇살, 아르바이트만 해도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는 높은 시급을 주는 낯선 땅에서 계나는 행복해 보인다. 물론 뉴질랜드라고 천국은 아니다. 계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추방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보증금도 날려보고, 인종차별도 겪는다. 위기를 겪으며 잠깐 한국에 들어오지만, 이내 다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제공.

1992년생인 배우 고아성은 극 중 계나와 비슷한 나이에 계나를 연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나의 선택에 공감이 가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에서 못 살겠다고 하는 계나의 마음, 외국에서 사는 게 더 힘들다고 걱정하는 주변의 마음 모두가 공감이 됐다. 고아성은 “보는 분들의 의견이 갈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찍었다”고 했다.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장기간 영화 촬영을 하면서 계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소설에서 계나는 ‘자금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금성 행복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을 가진 데서 성취감이 나오는 행복이고, 현금흐름성 행복은 아침에 사 먹는 커피가 주는 행복이다. 고아성은 “저는 계나와 같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더 원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유관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자영 등 고아성이 맡은 배역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간다. 계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제가 맡았던 캐릭터는 자유의지와 이성이 뚜렷한 인물이었고, 계나 또한 마찬가지”라며 “그런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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