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가계부채·부동산 늪에 빠진 이유에 대한 성찰 부족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고민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금리 동결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대해 “왜 우리가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금리 동결 이후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표출된 불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27일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구조적인 제약을 무시한 채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제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조그만 충격만 있어도 급등하는 구조가 형성됐는가 하는 문제”라며 “수도권, 특히 강남 부동산에 대한 초과 수요가 상시 잠재해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수요의 근저에는 입시경쟁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며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손쉬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정작 필요하지만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미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도 했다.
입시 경쟁 과열→서울·강남 쏠림→집값 급등→가계부채 악화의 연결 고리를 끊는 구조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 손쉬운 금리 조정으로 부동산·가계빚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법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 정부를 구체적으로 지칭하진 않았지만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대통령실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정부·여당에서 통화정책에 개입하려는 모양새가 나오자 이를 우회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더 안타까운 점은 이제 우리에게 해 날 때를 기다려 구조개혁을 추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제 태풍만 아니라면 날씨가 흐려도 단기 경제정책과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8271410001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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