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까지 총알배송, 택배기사들 죽어난다”…고객과 노동자 모두 행복해지는 실험 [기자24시]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8.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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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는 영국 택배업계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다.

주인공 리키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어 택배기사가 된다.

택배사가 고객 편의를 증대하기 위해 신속 배송을 실시하며 기사는 중노동을 감내하게 된 것이다.

서비스업계에서 고객의 만족도는 보통 노동자 삶의 질과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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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왼쪽)는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어 개인 사업자인 택배기사가 됐다가 중노동에 지쳐간다. [영화사 진진]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 택배업계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다. 주인공 리키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어 택배기사가 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하루 14시간 주 6일의 고된 근무. 개인 사업자가 되면 보다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는 기대는 착각이었다. 급한 일이 생겨 하루 쉬려면 100파운드(약 17만원)를 내야 한다. 리키는 몸이 상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악화한다.

왜 그의 삶은 고달파졌을까. 감독은 원인 중 하나로 ‘정확 배송’을 짚는다. 택배사가 고객 편의를 증대하기 위해 신속 배송을 실시하며 기사는 중노동을 감내하게 된 것이다.

택배기사의 과로는 오랜 기간 문제로 지적돼 왔다. [연합뉴스]
영화 속 택배사 사장은 기사끼리 경쟁을 붙인다. 한 기사가 일정을 따라오지 못하면, 다른 기사에게 좋은 라인을 배정한다. 사실은 그 역시 업계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옆 회사보다 신속하지 않다고 소문나면 그 또한 밀려날 것이다.

서비스업계에서 고객의 만족도는 보통 노동자 삶의 질과 반비례한다. 고객이 당일 배송을 당연시하는 가운데, ‘당연한 서비스’를 수행하지 못한 노동자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고객은 자기가 누리는 편리가 남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CJ대한통운은 이와 같은 반비례 관계를 깨보겠다고 선언했다. 서비스를 1년 365일로 확대하면서도 기사의 근무일은 주 6일에서 5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제도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 있다. ‘빨간날’에만 쉰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이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왼쪽)과 김종철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 회장이 지난 19일 ‘노사 상생 합의서’에 사인한 뒤 합의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한 기사가 월~금요일에 일하고, 다른 이가 금~화요일에 일하면 모두 일주일에 이틀씩 쉴 수 있다. 아울러 차세대 택배 시스템을 들이며 다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게 된 기술 진보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CJ대한통운의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서비스업계 역사에는 새 분기점이 마련될 것이다. 고객과 노동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불가능을 가능의 범주로 옮기는 창의적인 전환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국의 리키들은 그토록 꿈꿨던 주도적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박창영 컨슈머마켓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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