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 ‘역행인생’…천만 배달노동자 ‘현실에 역행’
지난 9일 중국에서 개봉한 배달원의 삶을 다룬 영화 ‘역행인생’(니싱런성)은 올 여름 최고 흥행작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배달원이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다뤘고, 현실 비판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능한 배우 쉬정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관객들의 평가도 썩 좋지 않다.
영화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정보통신(IT)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40대 가장 가오즈레이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설계한 알고리즘에 의해 잘린 가오는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가정불화까지 겪는다. 결국 가오를 받아주는 곳은 그가 평소 무시하던 배달 업계뿐이다. 배달원이 된 가오는 여러 위기를 겪으며 좌충우돌하다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본업이었던 프로그래머가 될 기회를 다시 갖는다.
역행인생은 중국 배달원의 어려운 근무 환경을 묘사한다. 배달에 늦거나 친절하게 응대하지 않으면 고객의 악평을 받고, 이것들이 쌓이면 한 달에 수백~수천 위안의 벌금을 문다. 주인공 가오는 이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무심한 고객들이 적지 않다. 배달원간 차별도 있어, 신입 배달원에게는 거리가 멀고 가격이 낮은 주문이 주로 돌아간다. 배달을 서두르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기에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다음 날 출근한다. 중국에서 어렵고 힘든 현실을 영화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행인생은 1천만명이 넘는 이들이 종사하는 배달 업계의 어려운 근무 환경을 꽤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중국 관객들의 평가는 박하다. 중국 최대 영화 평가 누리집인 더우반에서 역행인생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6.8에 불과하다. 8만여명이 평가에 참여한 결과이다. 더우반에서 평점 8 이상 영화가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홍행 성적도 개봉 18일이 지난 27일 현재 3억3727만위안(630억원)으로 올해 개봉 영화 중 23위에 그치고 있다.
가장 주된 비판은 영화에서 묘사한 가난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명문대를 나와 대형 정보통신 회사에 근무하며 자식을 학비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국제학교에 보내려던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배달원이 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가오가 배달원 생활 넉 달 만에 인슐린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해지고, 1년도 안 돼 배달왕에 오르는 것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고, 트럭에 치인 가오가 보험에 가입했다며 트럭 기사를 먼저 보내는 것 역시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객들은 가난을 잘 모르는 배우 쉬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머릿속 이미지를 영화화했다고 비판한다. 가난을 상품화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된 갈등이 배달원과 고객 간에 발행하는데, 훨씬 심각한 구조적인 갈등은 다루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백만 명의 배달원이 장시간 근무하고도 최소한의 소득밖에 벌지 못하는 것은 최적의 알고리즘으로 이들을 고용해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 배달 대기업 때문인데, 이를 외면한 채 무례한 고객과 배달원의 미숙함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중국 배달원의 현실은 영화와 거리가 있다. 메이퇀, 어러머 등 양대 배달 기업에 700만명 이상의 배달원이 있고, 이곳에 속하지 않은 배달원을 합치면 중국 전체에 1200만~1300만명의 배달원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배달원들은 소득이 낮은 농촌 지역 출신이 많다. 중국 최대 배달 기업 메이퇀은 2022년 기준 전체 배달원의 81.6%가 농촌 출신이라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빅테크 기업이 아닌 이들의 하청 기업에 속해 있어 적절한 대우를 받기도 쉽지 않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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