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교육개혁…한은이 사회문제에 목소리 내는 이유
"사회 안정·성장 잠재력 위협…과감한 대응책 필요"
이창용 총재, 한은의 '싱크탱크' 역할 강조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회구조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국은행이 이번엔 교육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입시 과열 경쟁이 사교육 부담과 교육기회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지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교육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주제로 열린 한은·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석해 “과거 고도성장기엔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고급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 입시경쟁 과열로 이어져 오히려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입시경쟁이 사교육비를 늘려 가계에 큰 부담을 줬고,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른 교육기회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작년 기준 초중고 학생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4%에 달한다. 사교육 참여율은 78.5%로 각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월 100만원 이상을 사교육비로 지출한 고등학생 비중은 고소득층과 서울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교육비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수준과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작년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소득수준별로 보면 월소득 8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은 97만원으로 월소득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38만원보다 2.6배 많이 지출했다. 반면 1인당 사교육비가 월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소득층에서 15%가 안 되는 반면, 저소득층은 27%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은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높지만, 절대액이 적어 사교육 기회가 제한적이란 의미다.
이같은 사교육 불평등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강화하고 대학입시의 지역 편중, 수도권 인구집중, 저출산 등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교육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배경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강해지면서 상위권대 신입생 중 서울 출신 비중이 높아지고,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입시경쟁 과열은 사교육 환경이 좋은 서울로의 이주 수요를 촉발해 수도권 인구집중의 원인이 되고 있고, 더 나아가 사교육비 부담과 수도권 인구과밀이 우리나라의 극단적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교육 시스템을 넘어 사회 전반 안정과 성장 잠재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한은이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회문제를 다루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한은은 작년 저출산 분석과 수도권 집중 비판 보고서를 냈고, 올해는 외국인 돌봄 노동자 도입과 농산물 수입개방 관련 연구를 발표해 각계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은은 본연의 역할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집중하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취임 후 줄곧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구조적 저성장’ 기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혀왔다. 구조적 저성장은 금리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한은의 방향성이 통화정책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물가안정, 금융안정 기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민간 부문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지적인 리더(intellectual leader)’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이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잠재성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봤다. 그는 작년 5월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 접어들었으며,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노동, 연금, 교육을 포함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6월 창립기념사에서도 한은의 싱크탱크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논쟁과 비난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머물 뿐 발전적 변화는 요원하다”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은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상렬 (lowhig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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