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 대학 입학정원 지역별 할당”…한국은행이 왜 이런 제안을?

손서영 2024. 8. 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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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을 제안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한국은행이 이번에는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 문제에 대응하자는 취지로 꽤 도발적인 제안을 내놨습니다.

바로 '지역별 비례선발제'인데요. 상위권 대학들이 대부분의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자는 주장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지역별로 정원을 할당해두자는 겁니다.

지금도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더 많은 인원을, 입학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 선발 인원으로 채우자는데 있습니다.

■ 지금 왜 이런 제안을?

과거 고도성장기 높은 교육열이 인재를 키워 고급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면 현재는 입시 경쟁이 과열돼 생기는 부정적인 사회 문제가 더 많다는 게 한국은행 진단입니다.

구체적으로 사교육 부담 및 교육기회 불평등 심화, 사회 역동성 저하, 저출산과 수도권 인구집중, 학생의 정서불안과 낮은 교육 성과 등을 들었습니다.

특히 사교육 환경이 좋고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우수한 지역으로의 이주 수요가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가 입시 과열과 연관된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입시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사교육비 격차,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로"

사교육비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죠. 하지만 숫자로 보면 그 실태가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동안 여러 대책이 있었지만 효과가 크게 없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사교육에 참여한 고등학생(일반고 등 진학 목적고 기준)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연평균 4.4% 증가했습니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금액 기준으로도 연평균 2.1% 늘었는데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에 참여한 고등학생 학부모는 전체 가계소비지출의 19.6%를 학원비로 지출했습니다.

이런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지난해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소득수준별로 보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97만 원으로,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38만 원)보다 2.6배 많이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울 내에서도 월 소득 8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123만 원을 지출해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54만 원)보다 2.3배 더 많은 지출을 했습니다.

이런 차이 실제 입학 결과로도 이어졌을까요. 그렇습니다. 200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학생을 매년 추적 조사한 자료(한국교육종단연구)를 보면 고등학교 재학 중 소득수준 최상위층(5분위)은 차상위층(4분위)보다 1.5배, 최하위층(1분위)보다는 5.4배 높은 상위권대 진학률을 보였습니다.

서울대를 기준으로 볼 때도 이런 쏠림 현상이 뚜렷했는데요. 서울 출신 학생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 가운데 16%에 불과했지만,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는 32%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소득수준이 높고 사교육이 활발한 강남 3구 출신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의 4%에 불과하지만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는 12%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실제 입시 결과를 봐도 서울 쏠림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가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로 이어지고 있고 특히 상위권대 입학생의 서울 출신 쏠림 현상을 유발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 분석입니다.

■ 학생 잠재력은 변수 안 될까?

이쯤에서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거주 지역의 중요성도 크지만 학생의 잠재력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요.

그래서 한은은 부모 소득이 상위 20%인 학생을 소득 상위그룹, 나머지 학생을 소득 하위그룹(소득하위 80%)로 나눠 두 그룹의 학생 잠재력 분포를 비교해봤습니다. 학생의 잠재력을 나타내는 변수로는 중학교 1학년(최초 조사 시점) 당시의 수학성취도 점수를 사용했습니다.

전체 학생의 잠재력을 5개 구간(분위)으로 나누고 구간마다 두 소득그룹 간의 학생 비중을 산출한 결과 동일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 경우에도 소득 상위그룹이 소득 하위그룹 학생보다 상위권대 진학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잠재력 최상위 집단의 상위권대 진학률은 소득 상위그룹이 20.4%로 소득 하위그룹(10.7%)보다 1.9배 높았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상위권대 진학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로 한은은 이를 제시했습니다.

한은은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약 25%만이 학생의 잠재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나머지 75%는 부모 경제력 효과라는 설명입니다.

■ "거주지역 효과도 진학률에 영향"

다만 지역 간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가 단순히 부모의 소득수준 차이로만 발생하는 건 아니라고 한은은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한 결과를 볼까요. 서울의 잠재력 기준 진학률(가상)은 0.44%로 비서울의 0.40%보다 0.04%p 높은 데 그쳤습니다. 반면 실제 서울대 진학률은 서울 출신이 0.85%로 비서울 출신의 0.33%보다 0.52%p만 높았습니다.

즉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약 8%(0.04%p/0.52%p)만이 학생 잠재력 차이로 설명되고 나머지 92%는 서울에 사느냐 비서울에 사느냐 즉 거주지역 효과로 분석된다는 설명입니다.

더 세분화해서 서울 안에서도 강남 3구와 다른 지역을 비교하면 잠재력 기준 서울대 진학률은 각각 0.50%와 0.39%로 1.3배 차이지만 실제 진학률은 2.04%와 0.25%로 8.2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한은은 부모의 경제적 효과가 뒷받침되면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경향성을 보이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는 않으며 학원 인프라 등 사교육 환경의 차이도 서울대 진학률 격차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 '지역별 비례선발제' 대안 될까?

한은은 그동안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입시제도가 수차례 바뀌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일부는 오히려 악화 됐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같은 과감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입시 경쟁의 정점에 있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이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정원의 상당수를 지역 학생으로 선발하는 게 핵심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거주 지역에서 불리한 지역의 인재들이 현재의 입시제도에서는 비슷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만큼 일정 부분 우대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체 합격자 가운데 특정 지역 출신의 비율을 전국 고3 학생 중 해당 지역 학생 비율과 일치시키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비율을 현실적으로 정확히 일치시키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각 지역의 선발 인원에 상한과 하한을 설정하는 유연한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은은 밝혔습니다.

실제 한은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시행할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분석한 결과 이 제도를 대부분의 입학 정원에 적용하면 서울대 진학률이 학생의 잠재력에 가깝게 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하한과 상한의 범위를 좁힐수록 각 지역의 서울대 진학률은 잠재력 기준 진학률에 가까워졌습니다.

이렇게 뽑힌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은은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 시행 중인 서울대 지역균형전형과 기회균형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성적(학점)을 들어 학업 성과에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정시 일반전형으로 많이 입학하는 강남 3구 출신 학생보다도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는 겁니다.

■ "수도권 집중 심화·지역 인재 유출 가능성도"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 자체가 떨어지는 지역을 배려하는 입시 정책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이를 통해 현재 수도권 집중에서 발생 되는 여러 사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거로 보입니다.

다만 오히려 이런 입시 제도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한은은 지역별로 선발 인원이 정해지면 초중등학생부터 서울로 올라와 입시 경쟁을 하려는 수요가 현저히 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지역으로 내려가는 수요가 생기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결국 이들이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뒤 사회에 진출해 계속 서울에 살게 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이 경우 지역 인재 유출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한은이 말하는 지역의 '잃어버린 인재'를 찾는 기회가 될지는 모르지만 입시 경쟁 해소와 그로 인한 사회 문제 해결에 근본적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란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입시 경쟁은 지역 안에서 또 다른 사교육 중심지를 만들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이런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에서도 부모의 경제력이 높은 학생들만 혜택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적에 대해 한은은 인정하면서도 다만 제도 시행에 따른 사회문제 해결의 효과가 이보다 클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제도 시행에 앞서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둬 문제를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지만 한국은행이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한 건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봐서입니다. 입시를 둘러싼 많은 문제가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성장까지 위협하고 있는 만큼 진솔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만 반드시 대학을, 그것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전제로 삼았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연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인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국은행 연구진들은 하버드대 정치학과 앨런 교수의 말에 착안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어진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학생의 잠재력 그 자체를 발견하는데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지점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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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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