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틱스 고평가보다 ‘이것’이 문제… 두산 개편 한달째 막고 있는 금감원 속내는

문수빈 기자 2024. 8. 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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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간 거래는 금감원이 지적할 여지 없어
핵심은 비상장사인 에너빌리티 신설법인 가치 평가
작년 배당 수입만 753억원인데… 두산, 현금흐름 고려 안 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막아선 금융감독원이 이번에는 정정 요구 사항을 분명히 드러냈다. 세간의 예상과 달리 교환 비율이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떨어져 나온 분할신설법인의 가치 평가 방식을 문제삼았다. 소액주주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두산로보틱스의 고평가 여부는 논란의 쟁점이 아닌 것이다. 금감원이 지적한 이 신설법인은 오로지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생긴 페이퍼 컴퍼니로,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회사다.

그래픽=정서희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날 금감원은 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의 내용을 담은 증권신고서에 퇴짜를 놨다. 그리고 회사에 신고서를 정정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수정 지시다.

해당 신고서가 금감원의 수리를 받아야 지배구조개편안을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이 신고서가 금감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주총을 열 수 없는 것이다. 로보틱스는 지난달 말 최초 신고서를 내면서 다음 달 25일에 주총을 연다고 공시했는데 연이은 정정 지시로 한 달 내내 금감원 증권신고서 심사 단계를 밟고 있어 개최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로보틱스가 공시대로 주총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증권신고서의 효력 발생일(제출하고 7거래일 후)과 주총 개최 전 소집 통지(주총 2주 전) 일정을 고려하면 이달 30일까지 증권신고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번 정정 요구에서는 지적 사항을 분명히 했다. 지적 사항은 투자자들이 불만을 품은 ‘로보틱스의 고평가’ 여부는 아니었다. 투자자들은 밥캣과 로보틱스 주식의 포괄적 교환 과정에서 로보틱스의 가치가 부풀려지면서 대주주만 이익을 챙기는 거래라고 비판해 왔다. 지난해 약 2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로보틱스의 1주와 같은 기간 1조원을 번 밥캣의 주식 0.63주가 같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상장사간 합병에 감독당국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밥캣과 로보틱스처럼 상장사 간 주식 교환 때는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다. 계열사 간 주식을 교환할 경우 대주주 자의대로 비율이 정해질 수 있어서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에 주가로 교환 비율을 산정하라고 못 박아놨다. 물론 할인 또는 할증을 통해 최종 가치를 정할 순 있지만 최고 할증·할인 비율은 10%라 주가대로 했을 때와 큰 차이는 없다.

실제로 금감원이 이번에 지적한 건 비상장사와 상장사의 합병이다. 비상장사는 주가가 없어서 현재 회사가 가진 자산(자산가치)과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수익가치)을 기반으로 합병 비율을 정한다. 자산가치는 현재 회사가 가진 자산을 평가한 것이지만 수익가치는 현재는 일어나지 않은, 향후 회사가 창출해 낼 현금 흐름이라 예측이 포함된다. 즉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 수익가치는 커지고, 부정적으로 내다보면 쪼그라드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의 지배구조개편에서 비상장사는 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부문이다. 두산은 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부문을 떼어내 신설법인을 만들고 여기에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을 붙이려고 했다. 결국 밥캣을 가진 신설법인(비상장사)이 로보틱스(상장사)와 합병하는 안이다. 신설법인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할수록 로보틱스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 책정된다.

실제로 두산은 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책정하면서 별도의 현금흐름을 추정하지 않았다. 밥캣을 자회사로 갖고 있어 배당금이 예상되는데도 이를 미래 수익으로 잡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밥캣이 에너빌리티에 지급한 배당금은 753억원에 달한다.

두산 측은 “피합병법인(신설법인)은 영업 관련 투자주식(밥캣의 주식) 등을 승계하는 지주회사로 자체 사업 수행에 따른 영업수익과 영업비용이 유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설법인이 곧바로 로보틱스와 합병할 것이라 배당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합병 가치를 산출할 땐) 기업이 영속된다는 가정을 해야 한다”며 “(신설법인이 지배구조 개편 후 사라진다고 해도) 3년, 5년 등 일정 기간을 정해서 수익가치를 투자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금감원은 두산에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를 계산할 때 배당할인법 등 미래 수익에 발생하는 효익에 기반한 모형을 적용해서 기존 기준시가를 적용한 평가방법과 비교하라고 지시했다. 투자자에게 두 방법을 모두 설명하라는 뜻이다. 배당할인법은 향후 예상되는 배당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모형이다.

금감원은 “향후 회사가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면 금감원이 요구한 사항이 충실히 반영됐는지 면밀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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