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의사는 '내부의 적'?…"그만두고 회개해라" 블랙리스트 또 등장
개인정보 유출 '낙인찍기' 반복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수련병원의 복귀 전공의와 근무 중인 전임의, 학교에 돌아간 의대생 등 1100명가량의 개인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가 재등장했다. 기존에 '참의사 리스트' '감사한 의사 명단' 등이 의사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공유된 것과 달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통해 공유돼 파장이 일고 있다.
앞서 불법적인 개인정보 유출과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다수의 의사가 처벌받았는데도 '낙인찍기'를 반복하는 의사들의 행태에 비난이 거세다. 자율 의사를 존중한다면서도 의사 내부에서 협박과 조롱을 확대·재생산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단체의 자정작용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한 아카이브 사이트에는 '감사한 의사 명단'이란 제목의 게시글이 지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기존 메디스테프와 텔레그램, 페이스트빈과 같은 사이트에 공유된 복귀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명단에 '추가 제보'가 더해져 내용이 방대해졌다. 아카이브는 웹페이지 캡처본을 보관하는 사이트로 원래 게시물을 삭제, 수정해도 기존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통해 복귀 전공의 등을 '디지털 박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시글은 지난 20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됐다. 게시물의 목차를 보면 최근 업데이트에서 전임의 명단에 이어 가을 턴(9월 전공의 모집) 지원자, 전공의, 의대생, 촉탁의 등 4개 직역의 명단이 신설됐다. 작성자는 자신의 이메일을 공지하고 △가을 턴 지원자 △기존 감사받은(복귀한) 전공의·의대생 명단 중에서 빠진 것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CMC(서울성모 등 가톨릭의료원 산하) 병원, 고려대병원 전임의 전체 명단 제보 급구라며 '제보 우선순위'를 남겼다. 오늘(27일) 추가 업데이트를 예고한 만큼 명단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작성자가 단순히 명단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이들에게 병원을 떠나라며 사실상 '협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성자는 "제가 약속드리는데 30년 뒤에도 이 리스트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자식분들이 성인이 될 때도 남아있을 것인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명단에 속한 전임의·전공의에게 사직을 종용했다. 또 "전임의(펠로) 경력을 인정받기 전에 그만두고 인증샷과 후배 전공의들한테 진정성 있는 카톡/텔레그램 보낸 인증샷. 진정성 있는 글 자체를 모 사이트에 올리면 제가 글을 읽어보고 내려 드리겠다"며 "실제로 그만두시고, 주변에 사과하고 회개한 분 제외됨"이라며 인하대병원 전공의 명단에 해당 사실을 '박제'했다.
현재까지 해당 게시물에는 전임의의 경우 서울아산병원 233명, 서울대병원 167명 등 '빅5' 병원을 포함해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 가천대길병원을 포함한 전국 78개 대학병원, 800여명의 이름·진료과·출신학교 학번 등의 구체적인 정보가 올라와 있다. 전공의는 서울아산병원 37명, 서울대병원 12명, 서울성모병원 6명을 포함해 150여명, 그리고 예과·본과·국시 응시자 등으로 구분된 의대생 150여명 등 명단에 오른 전체 인원은 총 1100명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제보받았다며 "술집에서 사람 팬 집행유예"라거나 "후배 여자들 만져대다가 이미지 나락" "모 병원 OO와 2년 차 OOO 선생님 결혼 축하드린다"라는 '신상털기식' 정보 공유까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실정이다. 이밖에 의료 개혁 등을 추진하는 국회의원·공무원의 실명을 비롯해 전공의 채용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명도 적나라하게 기재돼 있다.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 명단에 오른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서울대병원 전임의 등은 실제 근무 중인 의사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청한 당사자는 "잘못된 의료 정책에 제대로 된 목소리 못 낸 게 미안하다. 명단에 올라가도 개인적으로 피해를 받는 것도 아니고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동료 간호사 A씨는 "환자 생각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인데, 정작 내부에서는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적'으로 비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혀를 찼다.
의협을 비롯해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사들의 사직과 복귀를 '개인의 선택'이라고 공언했지만 반복되는 '의사 낙인찍기'는 뚜렷한 제재를 취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방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뢰받아 해외 공조를 통해 작성자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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