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 “삶은 가능성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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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만날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은 쳐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직장생활 3년차, 가까스로 대리를 달았지만 이러다 숨 막혀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지옥철', 불합리한 명령을 서슴지 않는 직장 상사, 흙수저 배경을 내려다보는 주변 사람 등 사자는 하루에도 몇번씩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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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만날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은 쳐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직장생활 3년차, 가까스로 대리를 달았지만 이러다 숨 막혀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지옥철’, 불합리한 명령을 서슴지 않는 직장 상사, 흙수저 배경을 내려다보는 주변 사람 등 사자는 하루에도 몇번씩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장강명 소설의 주인공이자 대한민국 20~30대의 절반은 내 이야기라고 여길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하는 말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등을 만든 장건재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한국이 싫어서’가 28일 개봉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지난 6월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으로 일부 관객과 먼저 만나며 호평받았다. 2015년 소설이 나오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다는 장 감독은 갓 돌 지난 아이를 키우며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던 생애전환 시기에 “처지는 다르지만 계나처럼 한국에서의 삶에 피로감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무렵” 이 책을 만났다. 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그래도 자기가 싫은 걸 가감 없이 이야기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떠나는 계나가 부러웠다. 이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이후 2022년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7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소설이 나왔던 시절 뜨거웠던 ‘헬조선’ 담론은 ‘욜로’ ‘파이어족’ 등 다양한 ‘기출변형’ 열쇳말들으로 바뀌었다. 같은 질문을 깔고 있지만 영화가 원작 소설과 다른 결의 작품으로 완성된 건 이런 시간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영화는 소설보다 계나(고아성)가 떠난 뒤의 삶을 좀 더 밀착해서 들여다본다. 지옥 같은 이곳을 떠나 도착한 그곳도 천국은 아니다. 계나는 인종차별을 겪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실수로 곤욕을 치르기도 하며 조금 편한 지름길로 선택한 일은 미끄럼틀처럼 그를 원점으로 되돌려보내기도 한다. 크고 작은 삶의 곤경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장 감독은 현지 촬영 준비를 위해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확장해나갔다. 많은 이민자의 꿈인 반듯한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신경증적인 불안을 안고 사는 중년 남성과 그의 가족이 계나의 생활 한 귀퉁이를 차지하도록 설계한 이유다. 소설의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닌 뉴질랜드로 계나의 목적지를 바꾼 이유 역시 시드니의 화창한 아름다움과 다양한 인간군상이 내뿜는 열기보다 몇도 낮은 고요함과 현실 삶의 적막함을 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원작과 달라진 건 계나의 마지막 선택이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 계나는 여전히 아등바등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자신이 속할 곳은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나선다. 이민이나 정착이 아닌, 용기와 모험 쪽에 무게추가 놓인 셈이다. 장 감독은 “계나가 삶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두는 인물이길 바랐다”고 했다. 계나가 다시 떠나기로 결심하는 건 막 서른살 생일을 보낸 참이다.
“서른살이면 아직 젊지 않나. 물론 우리도 서른살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웃음) 직장을 잡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인생의 정해진 트랙이 아니라 다른 길은 없을까, 계나가 그런 고민을 하길 바랐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이런 계나의 고민과 용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영화가 끝이 아닌 시작이길 바라는 장 감독의 말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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