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슬로건으로 한국을 홍보하는 것의 함정[콜린 마샬 한국블로그]
2024년 올림픽은 파리에서 열렸지만 한국에 긍정적인 관심을 많이 불러일으켰다. 미국인인 내가 매일 보는 미국 SNS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열광했던 선수는 바로 특이하고 멋진 모습의 사격으로 은메달을 받은 김예지 선수였다.
외신은 한국과 북한 탁구팀이 같이 찍었던 셀카도 마치 중요한 외교 행사처럼 보도했다. 삼성은 참여한 모든 선수에게 갤럭시 스마트폰을 줘서 적지 않은 광고 효과를 얻었을지 모른다. 한국의 해외 홍보를 담당하는 정부 관리들은 매우 기뻤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해외 홍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세계에 선진국으로 소개한 그 큰 행사 이후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작업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시아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해 특화된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옛날과 달리 내가 아는 많은 미국인이 한국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 방문하고 싶다고 하긴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되는 특징을 전혀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정체성이 독특한 나라인 한국이 그런 위치에 놓이게 되었을까?
몇 년 전에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흥미로운 현대자동차 광고를 보았다. 대도시와 대자연에서 달리는 차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영어 내레이션으로 한국의 감탄사인 “와”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광고 마지막에 ‘We Make Wah’(우리가 와를 만들다)라는 슬로건이 나온 후에 한글로 쓴 ‘와’도 화면에 나타났다. 이 광고는 한국 차를 한국어로 홍보할 수 있으며, 한국이란 국가도 그럴 수 있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내게 일깨워 주었다. 이 광고에서 한글과 한국의 문화적 특색까지 흥미롭게 받아들인 외국인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들에게 항상 한국에서 제일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가장 흔한 대답은 ‘예상외로 영어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동북아 나라들이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홍보하면서 한국어를 제쳐 두고 영어로만 홍보하려고 하는 것도 오산 아닐까? 한국을 홍보하는 데 영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도 포함하는 것이 최선의 정답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기자에게서 한국에 살며 더 좋아진 한국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미국에 살 때도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불편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한 후에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각자가 다른 메뉴를 먹으면 동질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기자는 외국인들이 나눠 먹는 것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굳이 한국에 올 필요가 없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낮다. 그들에게 한국을 익숙한 나라로 인식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나라 선수가 삼성 스마트폰을 받고 좋아한 것과 달리 한국을 전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좋아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앞으로 한국을 홍보할 때 한국을 좋아할 수 있는 외국인들을 겨냥해 한국의 이국성을 부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매운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즐기며 밀도가 높은 대도시의 생활을 선호하고 낯선 아시아 언어를 도전할 의지도 있는 그러한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한국이 해외에서 과하게 인기를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유명한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덜 ‘관광화’된 곳이어서다. 최근 일본의 경우 엔화 약세로 일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나 노력을 투자하지 않은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세계화된 사회라면 어떤 외국인이든 잘 환영해야 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세계화된 한국은 한국인들이 영어를 해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여야 하지 않을까?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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