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제 집에 가자”… 10년째 바다 뛰어드는 日남편 사연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의 위협으로 직장 건물 옥상에 고립된 아내는 남편에게 이 같은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쓰나미가 옥상마저 덮쳐버리면서, 이는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가 됐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아내의 죽기 전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며, 아내의 유해를 찾기 위해 10년째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아내를 잃은 일본인 남성 다카마쓰 야스오(67)의 사연을 조명했다.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해 센다이시 미야기현의 해안 마을 오나가와초에 자리 잡았다. 이후 슬하에 아들과 딸을 각각 한명씩 두고 안정적인 삶을 이어갔다.
2011년 3월 11일, 오나가와에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이 닥쳤다. 지진 여파로 마을 전체가 높이 14.8m의 쓰나미에 무방비 노출됐고, 경찰서·은행·기차역 등 주요 건물이 파괴됐다.
당시 야스오의 아내 유코는 건물 2층에 자리한 77은행 오나가와지점에서 근무 중이었다. 지점장이 쓰나미 높이가 약 6m에 달할 거라는 당시 보고를 받고 직원 13명을 모두 지상에서 10m 높이에 있는 옥상으로 대피시켰지만, 예상보다 큰 파도가 건물을 몽땅 삼켜버렸다. 그렇게 직원 12명이 쓸려갔고, 유코를 포함한 8명은 시신도 발견되지 못했다.
유코는 재난이 발생했을 당시 남편에게 “여보 괜찮아? 나 집에 가고 싶어”라는 내용의 문자 한통을 보냈다. 쓰나미가 유코를 삼켰을 때 야스오는 장모님을 시내의 병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쓰나미 피해 지역으로부터 꽤 떨어진 상황이었다. 자식들도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유코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사고 2년 뒤, 여전히 유코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구조대는 폐허에서 유코의 휴대전화를 발견했고, 이를 남편 야스오에게 전달했다. 휴대전화를 복구해 보니, 문자함엔 유코가 끝내 야스오에게 전송하지 못한 문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쓰나미가 엄청나네요.”
문자를 본 야스오는 이때부터 아내의 유해를 직접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내가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야스오는 아내를 찾겠단 집념 하나로 2014년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획득했고, 본격적으로 유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그가 바다에 뛰어든 횟수는 650회가 넘는다. 야스오는 “아내가 산 채로 발견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비록 아내의 유해 일부만이더라도, 아내를 꼭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야스오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내를 계속 찾을 거라고 했다. 야스오는 “한번은 바다에서 ‘같이 집에 가자’고 말했는데, 유코가 그 말을 들은 것 같았다”며 “할 수 있는 한 수색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2011년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당시 10m가 넘는 높이의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을 강타했다. 쓰나미는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에 큰 피해를 입혔다. 야스오와 유코가 거주하던 미야기현 오나가와초에선 1만14명 인구 가운데 8%(827명)가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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