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깎은 만큼 도로 늘려놓고…정부 “질적 전환”

박기용 기자 2024. 8. 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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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7일 국무회의에서 확정·의결한 '2025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예산 26조5천억원에서 3조2천억원, 11.8% 늘어난 29조7천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밖에 글로벌 연구개발 예산을 1조8천원에서 2조2천억원으로 늘리고 리튬화재 배터리 기술에 50억원,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 기술개발에 78억원을 새로 배정하는 등 기후위기와 신재난·범죄에 대응한 공공안전 연구개발 예산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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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정부 예산안 29.7조원
‘삭감 이전’ 2023년 대비 1.4% 증액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4월3일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부가 27일 국무회의에서 확정·의결한 ‘2025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예산 26조5천억원에서 3조2천억원, 11.8% 늘어난 29조7천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로써 “나눠먹기식 알앤디”, “카르텔”이란 윤석열 대통령 지적으로 대폭 삭감됐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삭감 이전인 2023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23년 예산은 31조1천억원이었는데, 일부 예산이 일반재정사업으로 재분류된 현재 체계를 소급해 적용하면 29조3천억원이다. ‘삭감 이전’보다 고작 4천억원(1.4%) 증액된 셈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단순히 숫자를 늘린 차원을 넘어 연구개발다운 연구개발로 바꾸는 과정을 지난 1년 간 거쳐 왔고, ‘질적인 전환’을 한 결과로 양(예산액)도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세부 내역을 보면, ‘3대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인공지능과 바이오, 양자 분야 기술주권 확립을 위한 예산을 올해 2조8천억원에서 3조5천억원으로 늘렸다. 인공지능 반도체를 데이터센터에 적용하는 ‘케이클라우드’ 사업을 신설해 370억원을 책정했고, 차세대 범용 인공지능 개발 예산은 올해 40억원에서 4배 이상 늘어난 180억원으로 정해졌다. 양자 분야에서는 1천 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에 98억원을, 양자컴퓨팅 서비스에 59억원을 새로 배정했다. 이와 관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으로 5년간 인공지능과 반도체, 첨단 바이오,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3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제1차 국가전략기술 육성 기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예산도 늘려서 ‘한국형 스타이펜드’ 장학금으로 불리는 ‘이공계 대학원 연구생활장려금’을 신설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학생인건비 기본액을 보장하고 지급 수준의 전반적 상승을 유도하는 취지로, 석사과정은 월 80만원, 박사과정은 110만원이 보장된다. 이공계 석사 장학금도 도입해 1천명에게 연 500만원씩 지급하고, 연구장려금 대상자 수도 올해 2472명에서 5131명으로 늘린다. 이밖에 글로벌 연구개발 예산을 1조8천원에서 2조2천억원으로 늘리고 리튬화재 배터리 기술에 50억원,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 기술개발에 78억원을 새로 배정하는 등 기후위기와 신재난·범죄에 대응한 공공안전 연구개발 예산도 늘렸다.

다만 과학계에선 단지 예산만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지원·육성이고 정부 정책이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예산이 회복된 건 당연히 환영할 일이나 예산만 복원해선 원상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삭감 파동’을 겪으며 많은 연구자가 이탈하는 등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적 비전 자체가 흔들린 상황인데, 이에 대해선 정부가 이렇다 할 후속 조처를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예산 삭감을 통해 “질적인 전환을 했다”는 정부 쪽 주장에 대해서도, 문 회장은 “아웃풋이 그대로일 것이란 가정 아래 인풋을 줄인다고 해서 효율을 높일 순 없다”며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끄는 역할을 하겠다는 명확한 시그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민기 ‘카이스트 입틀막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예산이 삭감됐을 때도 뭐가 문제여서 깎였는지 몰랐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말하는 ‘질적 전환’이라는 건) 뺏었다 다시 주는 것도 아닌, 뺏어서 다른 사람에게 줘놓고 ‘난 책임 없다’고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입틀막 대책위와 전국과학기술노조 등이 최근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발생한 피해 사례를 조사했는데, 접수된 43건 가운데 23.5%가 기존 연구인력 계약 해지, 14%가 대학원생 등 입학 포기 및 신규 인력 채용 불가 사례였다.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23.3%가 연구 목표와 내용이 축소됐고, 14%가 신규 과제 기획이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소속 한 연구자가 6년짜리 연구가 2년 남은 시점에서 사업중단 요구를 받거나, 과제 연구비의 80%가 삭감되면서 계약직 연구원인 남편이 실직하자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아내가 학업을 미루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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