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MBC 정상화’, 그리고 불굴의 윤 정부

박강수 기자 2024. 8. 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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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의 미디어 잔혹사 <4> 난공불락의 방문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에 참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화방송(MBC) 사장을 교체하려는 정권의 시도가 법원에 가로막혔습니다.

문화방송의 최대주주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라는 이름의 특수법인입니다. 9명의 이사로 구성되며 문화방송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과 함께 사장 추천권·해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방문진 이사회에서 다수를 확보하면(방문진을 함락하면) 문화방송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죠. 임기 반환점을 돌기 전 윤석열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방문진 이사 임명권을 가지고 있습니다)를 앞세워 방문진 이사진 지형을 재편하고 이를 바탕삼아 문화방송 사장도 교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구상은 ‘방문진 공략’ 단계에서 좌초하고 말았지요. 1년 사이 두 번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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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지난해 8월31일 해임처분 집행정지 심문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취재진을 향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원, 방문진 이사를 복귀시키다

이번 정부가 방통위를 오직 대통령 추천 몫의 상임위원으로만 채워 넣는 기묘한 다수파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드렸습니다. 그렇게 대통령 대리인이나 진배없는 구성을 갖춘 방통위는 지난해 한국방송(KBS), 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방문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지난해 8월21일 방통위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했습니다. 권 이사장은 곧장 해임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이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무를 유지하도록 해달라는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9월11일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줍니다. 권 이사장은 방문진에 복귀했고, 방통위는 즉시 항고했지만 지난해 10월31일 항고심과 올해 3월15일 재항고심 모두 권 이사장이 이겼습니다.

9월18일 방통위는 김기중 방문진 이사를 해임합니다. 김 이사 역시 11월1일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재판에서 이겨 방문진으로 돌아옵니다. 오히려 그사이 방통위가 권태선 이사장 빈자리를 대신해 넣은 김성근 이사의 직무마저 정지되면서 튕겨 나왔습니다. (권태선) 해임 처분이 정당하지 않으니, 그 보궐로 넣은 (김성근) 임명도 철회하라는 결정이었습니다. 여야 3대6 구도를 뒤집기 위한 방통위의 시도가 법원에 막혀 무위에 그친 것이지요.

거듭된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법원이 방문진을 원래 형태로 복원해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구절은 김성근 이사(권태선 보궐)의 자격을 정지한 항고심(작년 12월20일) 결정문에 나옵니다. 바로 그 ‘2인 방통위 의결의 위법성’인데요. 방문진 이사 선임과 같은 중차대한 의결을 위원 2명이서 처리하면 정당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방통위는 법에 따라 5인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2인은 대통령 몫, 3인은 국회 몫이다. 국회 몫 3명은 다시 여당 1명, 야당 2명으로 구성된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방통위라는 기관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하여 이를 바탕으로 방송의 자유, 공정성, 공익성, 국민의 권익보호,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단 2인 위원의 심의·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은 방통위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서울고등법원 2023년 12월20일 2023루1419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이 지난달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법원, 방문진 이사를 정지시키다

그리고 위 대목은 이번에 다시 법원이 방문진 손을 들어준 26일 결정문에서 그대로 인용, 반복됩니다.

지난해 방문진 1차 정벌(?)이 실패로 돌아간 뒤 방통위원장이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번째 방문진 공략을 지휘할 정권의 세번째 방통위원장으로 이진숙 위원장을 낙점합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출근 첫날 김태규 부위원장과 전체회의를 열고 한국방송 이사 7명, 방문진 이사 6명 선임안을 의결했습니다. 사전 면접이나 이렇다 할 위원 간 토의도 없이, 약 95분 만에 이사 지원자 83명의 서류를 검토해 최종 13명을 추려낸 가공할 속도전이었지요(임무를 완수한 이 위원장은 거대 야당으로부터 장렬하게 탄핵 소추되었습니다).

이에 현 방문진 이사 3명(권태선, 김기중, 박선아)이 방통위를 상대로 소송을 냅니다. 여기에는 지난해 법원에서 생환한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가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통위의 신임이사 선임이 “위법한 구성 속에 졸속으로 이루어졌으니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임기 만료를 일주일 가량 앞둔 지난 5일 임명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역시 이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집행정지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26일 서울행정법원이 인용을 결정합니다. ‘이진숙 방통위’가 선임한 새 이사들의 자격은 정지되고, 기존 이사들의 임기는 본안 사건 결정이 나올 때까지 연장된 것이죠. ‘2차 정벌’도 작년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커진 셈입니다.

법원은 이번 방문진 이사 선임 절차의 적법성을 ‘본안 소송에서 따져봐야 한다’면서 결정문에서 여러 쟁점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특히 ‘2인 방통위 의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통위라는 기관의 특성에 대한 해석을 남겼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방송의 자유란 헌법적 권리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방통위는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다양성에 뿌리를 둔 합의제 기관으로 설계되었는데, ‘이진숙 방통위’의 이번 심의·의결은 그러한 방통위의 설립 취지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판(“졸속 심의·불법 의결”)에 관해 방통위는 제대로 된 소명을 하지 못했기에, 이 사건은 본안 소송에서 법리를 다퉈봐야 한다.

―서울행정법원 2024년 8월26일 2024아12736
권태선 이사장 등 방문진 이사들이 26일 서울 방문진에서 법원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MBC 정상화’라는 먹구름

마침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는 현안질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법원 결정이 나온 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행정법원 가처분 결정에 대해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행정기관에 해당하는 방통위에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이루어진 인사권 집행이 사법부 결정에 의해 침해됐다고 보고 있다. 행정·입법·사법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고 본다. 공영방송 정상화에 지장이 생겼다. (방통위가) 본안소송에 적극 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문진 이사 교체가 ‘문화방송 정상화’의 일환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는 이번 결정문 속 방통위 쪽 주장에도 나옵니다.

“방통위는, ‘현 방문진 이사들이 재직하는 동안 문화방송이 편파성과 정치적 편향성으로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훼손하고 공정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방송심의를 통해 제재를 받고 있다. (중략) 이런 이사들에게 이사 지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도리어 공영방송 운영으로 인한 공공복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지금의 방문진과 문화방송을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사회적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행정부와 여당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합리적인 우려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문화방송 입장에서는 법원이 ‘권력의 마수’로부터 구해준 셈이지만, 정권 입장에서는 법원이 ‘문화방송 정상화’ 작업을 방해한 셈입니다. 두 번이나요.

‘3차 정벌’의 먹구름이 아른거리는 듯 합니다. 그저, 무운(武運)을 빕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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