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예산 여력은 없다"…'뉴노멀'이 된 긴축재정 기조
박근혜정부 시절 예산안을 편성할 때 유행했던 단어는 '슈퍼예산'이다. 당시 총지출 400조원을 처음 돌파하면서 확장적 예산이라는 자평이 이어졌다. 문재인정부에선 '초슈퍼예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총지출 증가율이 9.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더 이상 '슈퍼예산'이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현처럼 과거 우리의 강점이었던 재정건전성은 위험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정부는 긴축적 재정 운용을 선택했다. 긴축적인 재정 운용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았다.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3.2%.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4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총지출 증가율을 4.2%로 제시했는데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예산을 편성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정부 입장에선 확장적인 예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세입 예산(총수입)은 올해보다 6.5% 증가한 651조8000억원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5조6000억원 적자다. 쓸 돈이 거둬들일 돈보다 많은 구조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내년에 77조7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내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적자비율은 2.9%다.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3.0% 이내로 관리한다는 재정준칙을 강조해왔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3.6%다. 총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줄여도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8.3%로 올해보다 0.8%p(포인트) 올라간다.
유병서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세수 문제로 재정수지가 왔다갔다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기조"라며 "여전히 빚 내서 사는 나라살림인데 줄여가지 않고 계속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찍은 예산이지만 경제활력의 마중물인 재정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정부가 전망한 내년 경상GDP 성장률(4.5%)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정부 재정의 역할)비중도 줄어든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총지출 증가율이 낮은 수준에 머문 가운데 재량지출 증가율은 0%대를 기록했다. 내년 재량지출 증가율은 0.8%로 전체 총지출 증가율보다 훨씬 낮다. 총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뉜다. 의무지출은 법에서 쓸 곳을 정한 예산이다. 재량지출은 말 그대로 행정부와 국회가 재량권을 가진 예산이다.
기재부는 내년 0%대 재량지출 증가율에도 대학 국가장학금과 병사 월급 등 각각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예산을 편성했다. 이 말은 다른 사업에서 대규모 감액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감액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출구조조정 규모는 24조원이다.
앞으로도 긴축적인 재정 운용은 이어질 전망이다. 기재부가 이날 발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이 기간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3.6%다. 그나마 의무지출이 △2025년 5.2% △2027년 7.0% △2027년 5.5% △5.0%로 높고, 재량지출은 이 기간에 각각 0.8%, 0.3%, 1.5%, 1.8%에 그친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예산의 총량으로 재정의 역할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볼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해야할 일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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