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멋’의 민족”…옷에서 지혜와 멋 풀어낸 배성주 명인 전통복식展

이나경 기자 2024. 8. 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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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화센터에서 배성주 전통복식 초대전 ‘의(衣) 손끝에서 피어나다’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배성주 명인(62)이 전시 작품 앞에 서 있다. 이나경기자

 

“멋에 있어서는 조선의 남자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은 굶더라도, 잠은 밖에서 자더라도, 옷은 갖춰 입어야 한다는 분들이었습니다. 복식을 갖추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서 품위와 품격이자, 상대와 자신에 대한 예의였던 것입니다.”

다홍빛의 철릭(조선시대 선비들이 주로 입던 겉옷)에 빨간색의 띠가 매어져 있다. 그 옆엔 검붉은색의 주립(갓)이 놓여있다.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일명 ‘(색)깔맞춤’이다. 주립의 양 끝에는 초록빛의 꿩 깃털이 하늘을 향해 달려있다.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통복식을 재현한 다양한 작품. 이나경기자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의(衣)’와 함께한다. 세상에 처음 나와 배냇저고리를 입고, 생의 마지막 순간 수의를 입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배성주 명인(62)은 “20년 넘게 전통 복식을 연구하며 느낀 것은 우리는 정말 옷을 사랑하는 ‘멋의 민족’이라는 것”이라며 “조선의 남성들은 정말 화려함을 사랑하고, 엄청난 멋을 부렸다”고 말했다.

오는 31일까지 팔달문화센터 1층과 지하 전시장에서 열리는 (사)수원예총 주관의 팔달문화센터 초대전 배성주 전통복식전 ‘의(衣) 손끝에서 피어나다’는 배 명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의’를 통해 선조들의 멋과 지혜를 알 수 있는 전시다. 출토 복식과 유물 등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과 선조들의 옷을 손바느질로 재현한 작품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배성주 원장이 전주이씨 밀창군이 입었던 도포를 재현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과 겉이 분리돼, 자리에 착석하면 도포가 펼쳐져 뒤를 가릴 수 있다. 이나경기자

배 명인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침선장 故 박광훈 선생의 이수자(2003)로, 선생에게 18년간 가르침을 받은 한국예술문화명인(2019)이자 제37회 대한민국전통문화예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아홉 번째 초대전이다.

전시에선 역사책에서 보던 혹은 교과서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낡은 황톳빛과 흑백 자료 속 전통복식을 2024년 현재 유리창 넘어 평면 감상이 아닌, 가까운 눈앞에서 사방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영조와 정조, 고종 황제 등 임금의 옷부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입었던 예복, 성균관 유생과 학자들이 입었던 일상복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홍곤룡포(좌측)와 황곤룡포(우측) 등 다양한 전통복식을 만날 수 있다. 이나경기자

특히 영·정조 때 입었던 붉은 색의 홍곤룡포와 조선 말기 고종 황제가 입었던 황곤룡포 등 지하 전시장 한 가운데 놓인 조선시대 왕의 옷은 자수까지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어 특별하다. 발가락이 다섯 개인 용을 금실로 수놓은 오족룡원보가 가슴과 등, 양어깨에 달린 용포는 왕의 위엄을 자아낸다.

선조들이 입었던 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옥 사랑채로 지어진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옷에 비춰지며 원단의 주름 하나까지 감상할 수 있다. 배 명인이 200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수상한 작품에서는 상의와 하의 이음 부분에 자리한 1mm 간격의 주름이 인상적이다.

철릭의 상의와 치마형 하의 사이 1mm 간격으로 제작된 주름이 인상적이다. 배 명인은 해당 작품으로 200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나경기자

또 다른 복식의 원단에 멋스럽게 자리한 문양은 오히려 현대의 기술로 복원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원단 위에 자수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원단을 직조할 때부터 다양한 문양을 함께 새기며 천을 짜낸 것이다. 배 명인은 “선조들은 대단한 손기술을 가졌다”며 “오히려 지금에 와서 컴퓨터를 통해 이를 재현하려고 해도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예전의 원단만큼 섬세한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어떠한 생활을 해나갔는지와 함께 화려함 속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실용성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조선시대 무관인 포도대장, 병마절도사 등이 입었던 포인 구군복은 길고 넓은 소매가 분리될 수 있다. 전투에서 부상 시 이는 붕대의 역할을 할 수도, 식량 주머니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외 다른 철릭를 보면 소매 부분이 분리되도록 쌍미리(쌍밀이) 단추가 달려있다. 활을 쏘기 용이하게 한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덕망 있는 선비가 입었던 포 ‘학창의’를 재현한 작품. 단순한 옷이 아닌, 이들에게 있어 명예로움을 자랑하는 상징적인 의복이었다. 이나경기자

복식의 세밀함을 들여다보면 오래전 조상들이 이 옷을 갖춰 입고 어떻게 움직이고, 생활했는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배 명인은 “목 부분에 자리한 깃에 달린 동정은 흰색의 멋만 내는 것이 아니라, 때가 타거나 낡으면 이 동정만 따로 떼면 언제든 새 옷처럼 깔끔하게 입어 청결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라며 “조상들은 옷에 화려함만 담은 것이 아니라 실용성까지 함께하는 지혜를 자랑했다”고 말했다.

배 명인은 “조선이라고 하면 우리는 고리타분한, 선비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멋과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며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이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까이서 옷을 관찰하고 관심을 갖길 바랐다”고 전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이들이 우리의 옷에 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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