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그 후 1년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2024. 8. 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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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진 수협중앙회장

한비자(韓非子)에는 ‘사람 셋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는 털끝 하나 보이지 않은 호랑이지만, 세 명이 ‘호랑이가 시장에 나타났다’고 말하면 진실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1년 전, 우리 어업인들은 그 호랑이와 싸워야 했다. 근거 없는 흉흉한 말들이 천리마보다도 빠른 발 없는 말이 되어 전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누구도 실체를 본 적 없는 ‘방사능 오염 수산물’이라는 호랑이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일본산 누명을 뒤집어 쓴 제철 봄 멍게는 외면 받았고 깨끗한 우리바다에서 정성껏 키워낸 물고기들조차 마치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라도 다녀온 양 취급당했다.

한 양식어업인은 필자에게 “차라리 물고기를 싹 다 풀어주는 게 낫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수년간 온갖 정성에 큰 돈 들여 키운 고기를 한 푼 못 받고 그냥 내버려야 할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이렇게 가는 곳곳 전국 어촌은 아비규환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꺼림칙하니 그저 수산물을 먹지 않으면 되는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먹거리는 채소나 고기로 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어업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를 간신히 버텨냈는데, 산 넘어 산과 같았다. 소비 감소의 그림자는 짙어지고 어업인들의 우려는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깨끗하고 안전한 우리 바다에는 변함이 없음을 누구보다 확신하는 어업인들이었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체 없는 호랑이부터 잡아야 했다.

어업인들은 정부와 협력해 저잣거리의 호랑이는 헛소문임을 명백하게 밝혀 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부는 매일 브리핑을 통해 과학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를 전파했다. 해류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 다양한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에 근거해 우리 바다의 안전성을 적극 설명했다. 또한,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대폭 확대하고 우리 해역 곳곳을 촘촘히 모니터링하며 철저한 경계망을 구축했다.

수협도 자체 검사역량을 강화하고, 유통의 안전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조치를 시행했다. 특히 전국 수협과 어업인들은 단 한 건이라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 된다면 모든 어획물을 폐기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앞세워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수협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정을 앞둔 국가대표선수단을 위해 보양수산물을 제공한 것 또한 안전에 대한 100% 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펼친 이러한 노력들은 실로 극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고사 직전의 전국 어시장에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개점휴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전국 어시장에 사람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고, 정부의 할인행사 효과까지 더해져 이전보다 더 호황을 누렸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현명함과 높은 의식 수준이 빛을 발한 덕분이다. 과학을 신뢰하는 지혜로운 국민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려내며 사실만을 믿었고, 우리 수산물을 즐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위기는 곧 기회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초래한 위기는 우리 수산물 유통과 공급체계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이전보다 대폭 강화된 철저한 검사와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들이 더욱 안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 바다는 더 안전해졌고, 어업인들은 더욱 강해졌다.

끝날지 않을 것 같았던 무더운 여름을 지나 풍요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날이 선선해질수록 살이 차오르는 제철 꽃게와 새우, 전어 등 입맛을 한껏 돋아줄 싱싱하고 영양 가득한 수산물이 국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름내 폭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엔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 가을, 안전한 우리 바다에서 나는 풍요를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란다. 수산업과 국민 모두가 함께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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