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13년간 철도로 인해 고통… 원도심 살리기 활용 여론

김재근 선임기자 2024. 8. 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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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희망이다] 방치된 대전선 이대로 둘 것인가
주변지역 슬럼화·주거 환경 악화… 지역 발전 걸림돌 작용
市 등 관련기관, 공원·관광철도·트램 등 대안 마련 나서야
대전선(붉은색 노선)은 대전역-서대전역을 연결하는 5.7km로 일제 때인 1911년에 설치됐다.

'대전 0시 축제'가 17일 막을 내린다. 지난 9일부터 원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왜 0시 축제일까? 이 축제는 1956년 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가수 안정애의 노래 (대전 부르스)에 나오는 '대전발 0시50분'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깊은 밤 대전역에서 이별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와 관련된 철도가 '대전선'이다. 대전선은 대전역-서대전역에 이르는 5.7km의 단선철도이다. 대전역에서 경부선을 타고 북상하다가 서남쪽으로 남행하여 서대전역에 연결된다.

대전 동구-대덕구 -중구를 연결하는 대전선은 현재 공사 때문에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대전선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얽혀있다. 일제는 1905년 시모노세키항과 조선의 부산항을 연결하는 관부연락선을 도입했고, 부산항에서 대전을 거쳐 경성(서울)을 연결하는 경부선 철도도 준공했다. 곡창지대인 호남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1911년 대전역-연산, 1914년에는 호남선 모든 구간을 개통했다. 일제의 입장에서 부산-대전-서울의 경부선, 대전역에서 갈라져 호남까지 연결하는 물류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호남선의 기점은 대전역, 종점은 전남 목포역이 됐다.

□ 1911년 일제 때 개설… (대전 부르스)로 유명

일본 중심의 이러한 철도 연결체계는 해방 이후 불편을 초래했다. 해방이 되자 부산↔호남보다 서울↔호남을 오가는 물동량이 크게 늘었는데 서울에서 호남을 가려면 경부선을 따라 남행하던 열차가 대전역에서 멈춘 뒤 기관차의 머리를 북쪽으로 바꾸고 그 뒤에 열차를 다시 연결하여 서대전역으로 가야 했던 것이다.

1978년 호남선이 대전역을 거치지 않고 대전조차장에서 직접 서대전역으로 가도록 개선됐다. 대전역-서대전역을 잇는 대전선의 활용도가 뚝 떨어진 것이다. 한동안 여객과 화물 운송을 담당했지만 현재는 기능이 중지돼 있다. 홍도과선교 지하화 공사(2017-2021년)와 대전천 교량 개량공사(2020년-진행중) 때문에 열차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대전선 철도 주변은 슬럼화가 진행되고 공장과 창고 등이 들어서 있다.

7년 넘게 활용하지 않은 탓으로 폐선과 다를 바 없다. 수목이 자라 철길을 덮고 쓰레기도 눈에 띈다.

1911년 7월 10일 호남선 대전역-충남연산 구간 개통으로 대전선이 등장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날랐지만 옛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호남선이 대전조차장에서 서대전역으로 직결됐고, 2015년에는 호남선KTX도 등장했다. 전국토에 고속도로와 국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됐다.

철도가 대전의 발전에 기여한 게 사실이지만 철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전 동구와 중구, 대덕구 도심을 단절시키고, 철도 주변 슬럼화를 초래했다.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고 지역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동구 삼성·홍도동과 중구 중촌동, 대덕구 오정동 주민들이 온갖 불편과 불이익을 당해왔다.

□ 호남선 서울-서대전역 직결, 기능 크게 위축

이 일대는 상가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곳보다 땅값이 훨씬 싸다. 소음·진동의 피해와 재산가치 하락까지 감수해온 셈이다. 실제 철도 주변에는 대개 창고와 공장, 주거환경이 열악한 낡은 주택이 들어서 있다. 철도가 구도심 침체 요인 중의 하나인 것이다.

기능을 상실한 대전선을 침체된 원도심 살리기에 활용하자는 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과 대전시청, 3개 구청, 시의원, 경제계 인사 등이 대전선 폐선과 재활용을 주장했다.

서울시 노원구 경춘선 폐선에 나무와 꽃 등을 심어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을 만들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가장 많이 거론된 대안이 공원 조성이다. 국내에서는 서울 노원구 경춘선 폐선에 나무와 꽃, 산책길이 어우러진 경춘선 숲길이 조성됐다. 마산에서도 폐지된 임항선 4.6km에 그린웨이라는 공원이 조성됐다.

프랑스 파리시는 1969년부터 방치돼있던 폐철도에 4.5km 길이의 녹지공간을 만들었다. 프롬나드 플랑테 공원은 파리시민의 자랑하는 녹색 휴식공간이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도 폐쇄된 철도를 재창조한 공원이다. 맨해튼과 허드슨강의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연간 8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폐철도를 재창조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연간 80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사진=뉴욕시청

체험형 관광철도도 등장했다. 2016년 대전시는 국립철도박물관 조성 방안의 일환으로 대전역에 한국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시하는 제1박물관, 종촌공원에 글로벌 철도테마파크를 내용으로 하는 제1박물관을 짓고 대전선에 증기기관차를 운행하자고 제안했다.

관광과 여객운송을 겸한 트램도 거론되고 있다. 군데군데 트램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생하고, 충청권광역철도 및 대전역세권과 개발과도 연계하자는 것이다.

□ 공원, 관광철도, 트램 등 다양한 대안 등장

이외에도 강원도 정선군 구절리역-아우라지역처럼 폐선에 궤도자전거(레일바이크)를 운행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대안이 등장했지만 철도시설공단과 국토교통부는 부정적이다. 대전선이 경부선과 호남선을 연결하는 유일한 노선이며, 향후 다시 화물과 여객 운송에 사용할 계획이고, 선로 장애 비상대응 및 유지보수 장비 이동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전천 교량 개량 공사가 끝나면 열차 운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대전선의 기능과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 것은 뻔하다. 굳이 철도가 아니라도 대전과 호남을 잇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등장했다. 이제 113년간 철도 때문에 고통을 받아온 동구, 중구, 대덕구 주민의 삶을 보살피고 보듬어야 할 때가 됐다. 특히 이들 3개 구는 2021년 인구소멸 관심지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대전선 때문에 동네가 단절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철도 아래에 개설된 도로로 차량이 다닌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철도 때문에 수십만명이 사는 동네가 이리저리 단절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개발 소외 지역으로 방치되고 있다. 호남-경부선 연결 횡단철도를 대전 도심 밖에 신규개설하거나 신설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 충청권산업문화철도,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등을 활용하는 대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대전 3개구 살리기 차원에서 대전선 폐선 및 활용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이해 당사자인 대전시와 철도시설공단, 국토부의 공감대 형성과 이해, 긴밀한 공조가 시급하다.

폐철도 4.5km에 조성된 프롬나드 플랑테는 파리시민이 자랑스러워 하는 녹색공간이다. 사진=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

"도시철도 등과 연계 활용방안 살펴봐야"

임재빈 충남대 대학원 교수

"활용도가 떨어진 대전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습니다."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임재빈 교수는 대전은 철도 도시라며 기존의 도시철도와 트램, 충청권광역급행철도(CTX) 등과 묶어 대전선 활용방안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철도 및 교통 측면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원도심 활성화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선을 활용하려면 우리 입장만 강조할 게 아니라 폐선에 따른 대안도 고민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철도시설공단과 국토부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전의 교통체계는 세종, 청주, 공주 등까지 크게 봐야 한다며 그래야 미래지향적인 광역도시, 메가시티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충청권 공동 발전을 제대로 수립, 추진할 수 있도록 미국 워싱턴D.C처럼 워싱턴광역권정부협의회(MWCOG)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자치단체장 등이 두루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및 도시계획, 교통계획, 경제 및 지역사회개발, 오염규제, 수자원이용 등을 결정하고 사무처를 둬 실행력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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