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로 車보험료 인하 멈추나…고민 깊어진 손보 업계
(시사저널=김태영 시사저널e 기자)
최근 자동차보험료 인상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상승한 가운데 전기차 화재 사고까지 겹친 탓이다. 2022년부터 3년 연속 보험료를 인하해 보험사의 부담이 커진 데다 전기차 화재 등의 여파로 손해율은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 추세대로라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손해보험 업계는 한숨만 내쉬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 특성상 정부가 우회적으로 개입한다는 점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양측이 타협점을 찾아 상대적으로 사고율이 높은 전기차와 낮은 비전기차를 구분해 보험료 조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적자 상품으로 바뀐 자동차보험
8월20일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롯데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 7개 손해보험사의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0.1%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77.7%) 대비 2.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보험사가 사고가 난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을 전체 자동차보험 가입자로부터 받은 수입보험료로 나눈 값을 의미한다. 보험사들이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보험금이 얼마나 빠져나갔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보험사별로 살펴보면 롯데손해보험이 82.1%로 손해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한화손해보험 81.8% △현대해상 80.7% △KB손해보험 79.4% △삼성화재 79.2% △메리츠화재 78.8% 순으로 나타났다.
통상 손해보험 업계에서는 자동차보험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손해율을 80%로 보고 있다. 손해율이 80%를 넘으면 사실상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이익이 없거나 적자를 보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순익에 기여했던 자동차보험이 올해는 적자 상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해 자동차보험 보험순이익은 5539억원으로, 전년(4780억원)보다 15.9% 증가했다. 2021년 3981억원, 2022년 4780억원에 이어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다르다. 대형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자동차보험 부문 손익이 일제히 악화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올 상반기 자동차보험 손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1% 감소했다.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도 각각 10.7%, 45.4% 줄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손해율이 손익분기점을 초과하면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을 검토한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보험료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2022년부터 손해보험 업계는 정부의 상생금융 기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 장마철 집중호우로 차량 침수 피해가 늘어 이미 손해율이 올라간 데다 최근에는 전기차 화재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손해율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8월6일부터 8월22일까지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12개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차량 피해는 3496건, 침수 피해액은 3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6~8월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2395건, 175억원)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올해 장마 시작 3주 만에 지난해 대비 건수로는 1.6배, 금액으로는 1.8배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3년 연속 보험료 인하 후폭풍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아직 반영되지 않은 여름 장마철 차량 침수와 최근 인천 전기차 화재까지 고려하면 차량 피해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돼 손해율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실제로 자동차보험료를 올릴 수 있는지 여부다. 자동차보험료는 손해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민간 영역이지만, 2000만 명이 가입하는 의무보험이니만큼 정부의 의견이 반영된다. 특히 자동차보험료는 소비자물가와도 직접 연결돼 있어 금융 당국은 자동차보험료 조정과 관련해 일정 수준에서 개입하고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여파로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만큼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보험료를 내려야 한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관철된다면 민생 지원 명분으로 되레 자동차보험료 인하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 이익 규모가 증가한 만큼 올해 역시 상생금융 차원에서 보험사들이 적극 보험료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상승하고 있는 손해율에 설상가상 최근에는 전기차 화재 사고라는 새로운 고비를 맞았는데 이 상황에서 보험료를 추가로 인하한다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포비아'라는 말을 양산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인천 청라 화재에 이어 최근에는 용인, 안동 등에서도 화재 사고가 계속 나고 있다"며 "자동차보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는 손해율을 악화시키는 새로운 뇌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율 높은 전기차에 한해 보험료 인상할까
일각에서는 전기차와 비전기차를 구분해 보험료 조정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치솟은 손해율로 인해 자동차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손해보험사와 민생 지원 차원에서 내려야 하는 정부 사이에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는 판단이 전제된다면 사고율이 높은 전기차에 국한해 보험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타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화재·폭발에 의한 전기차 사고 건수는 비전기차 대비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자기차량손해담보 사고 가운데 전기차가 1만 대당 0.93대로 나타났는데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차 포함) 화재·폭발 사고는 1만 대당 0.9대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전기차 화재·폭발 사고 피해액은 비전기차보다 두 배가량 높다. 사고 건당 손해액도 전기차가 1314만원, 내연기관차는 693만원으로 전기차가 1.9배 높았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통상 전기차는 동급 대비 가격이 비싸고 한번 불이 붙으면 차량이 전소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손해액도 높다"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기차 화재 등 사고 증가로 위험요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전기차에 대한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정부의 자동차보험 플랫폼 비교추천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으로 전체적인 자동차보험료 인하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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