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어른’ 연 7만명…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사라진 어른들]
딸의 꿈 위해 짓던 300평부지 사육장만 덩그러니
위험한 실종’엔 적극수사 가능하게 법제화 필요도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평(3.3㎡)당 4만원짜리, 강원도 철원의 갈말읍의 산골짜기 땅. 장래성도, 투자성도 따지지 않고 샀다. 그래도 아빠는 괜찮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막내딸과 소박한 꿈을 펼쳐낼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미술 전공한 막내딸이 굳이 수의사 면허를 따겠다고…. 수의대 편입 시험에 덜컥 합격해버린 거예요. 이런데 땅을 사두면 나중에 (딸이) 동물병원 차리고서 반려견 분양도 하고 아픈 애들 치료도 해주는 공간으로 쓰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샀어요.”
3000평 부지 일부에 사육장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6월 6일, 오전 4시 21분. 막내딸 이윤희가 사라졌다. 준공을 한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증발하듯 없어진 딸은 18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아빠의 땅은 그때 시간이 멈췄다.
만 28세였던 수의대생 이윤희 씨의 실종은 미디어를 통해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으로 알려졌다. 18세 이상 ‘성인 실종’의 대명사가 됐다. 60대 막바지에 금지옥엽 막내를 잃어버린 아버지 이동세(87) 씨는 70~80대를 오롯이 딸을 찾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는 막내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강아지 털 고르고, 미용하고 그런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거든. 그런 거 하면서 숨어 살고 있을 거야. 막상 나오자니 창피하고. 하도 많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가지고…. 엄마, 아빠 죽기만 바라고 있을텐데. 내가 그렇게 쉽게 죽나.”
평범한 대한민국 어른들은 의외로 많이 사라진다. 경찰청이 제공한 통계를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7만2446건의 성인 실종(만 18세 이상)이 접수됐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3만6949건의 신고가 있었다.
경찰은 치매 환자나 장애인이 아니라면 성인의 행방불명(재난,사고로 인한 실종 제외)을 처음부터 실종으로 접수하진 않고 ‘가출인’으로 등록한다. 말 그대로 집을 나간 사람이란 뜻으로, 이들 대부분 연락이 닿아 생사가 확인되거나 혹은 시간이 지나 집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후의 행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장기 실종자들과 심지어 사망한 채 발견되는 경우도 해마다 1500여명씩 나온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위험한 실종’이라고 한다.
신고가 된 실종 성인 가운데 사망으로 발견되는 비율은 평균 2.0% 수준이다. ▷18세 이하 아동 ▷장애인(지적·정신적) ▷치매 환자의 실종 신고접수 건수 대비 사망 발견 비율(0.2~0.3%)의 10배에 달한다. 아동이나 장애인은 없어지더라도 대개 어떻게든 발견돼서 보호자와 만나지만, 성인은 영영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위험한 실종은 미리 걸러내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단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10년 이상 생활반응이 없는 성인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추정할 수 있는 수만 7000명쯤 된다”며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이거다. 심각하게 볼 사회적 문제다”고 강조했다. 생활반응은 금융 거래 내역, 휴대전화 통화기록, 인터넷 접속 내역 등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남기는 온갖 기록들을 말한다.
민간조사기업인 블랙커의 김윤환 대표는 “수사기관에선 초기에 실종 접수를 잘 안 해주니 민간업체에 가족 찾아달란 의뢰가 많지만 개인정보법 때문에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라며 “실종자들에겐 통상 24시간이란 골든타임이 있는데 급박하다고 판단되면 확실한 경찰 수사를 벌이거나 민간에서 합법적 수준으로 위치 추적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의 ‘위험한 실종’은 대개 3가지 틀로 나눠볼 수 있다. 헤럴드경제가 2015년 이후 언론에 보도된 성인 실종 사건 가운데 아직까지 명확한 배경이 파악되지 않은 15건을 분석했다. 실종의 배경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신변비관·우울) ▷원한·채무관계 등에 의한 범죄(살해)로 추정되거나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 씨의 사건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미제)로 남는 경우도 많다.
자살로 추정하는 경우는 대개 실종(가출인) 접수 후 몇 주 뒤에 망자의 사체가 발견되고 타살 흔적이 없는 경우다. 지난 2022년 8월 초 서울 강서구 가양대교 인근에서 마지막 흔적을 남긴 뒤 사라진 30대 여성 A씨는 2주 뒤 백령도 인근 바다에서 군인들에게 발견됐다. 검시한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해 자살로 사건 종결했다.
범죄와 연결고리가 있는 실종은, 경찰이 수사를 벌이면서 당사자의 복잡한 인간관계가 드러난다. 2017년 11월 강원도 춘천 인근에서 실종된 목사 부부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편인 목사 B씨의 시체는 찾았으나 아내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경찰은 사이비 종교와 연계된 범죄로 추정했으나 실종자와 관련한 뚜렷한 단서를 찾진 못했다.
두 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아직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흐르고 있는 미제사건이다. ‘실종은 기억에 의한 살인’이라는 말처럼 실종자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는 가족은 큰 고통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사건들은 사람이 ‘사라진 이후’의 결과로서 발생한 비극이다. 만약 이들이 없어진 직후 빠르게 추적을 했다면, 막을 수 있는 결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상 수사기관은 실종자가 ‘사라지기 전’에 뚜렷한 범죄 혐의점이나 자살의 징후를 남겼을 때에만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이 간극에서 성인실종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법으론 모든 성인의 실종을 법적으로 강제 수사할 근거가 없다”며 “범죄 연결성이 의심되거나 수사의 대상이면 형사수사의 절차를 밟으면 되나, 그게 아니라면 경찰권을 발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수사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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