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터널 통행료 유료화 철회에 구덕운동장 재개발도 '흔들'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백양터널 통행료 유료화와 구덕운동장 재개발 등 부산시가 추진해온 사업이 잇달아 무산되거나 좌초 위기를 맞았다.
여론 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은 백양터널 통행료 유료화 결정이 무료화로 뒤집혔고, 주민과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도 난관에 봉착했다.
부산시는 지방의회와 주민 여론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사업 추진 방향을 바꿨다고 하지만 여론 청취에 소홀해 행정력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대 여론에 무산된 백양터널 유료화
길이 2.44㎞ 왕복 4차로인 백양터널은 2000년 개통해 2025년 1월 9일까지 민간 사업자가 운영한다. 1월 10일부터는 부산시가 터널 관리권을 넘겨받는다.
부산시는 이에 맞춰 현재 소형차 기준 900원인 백양터널 통행료를 500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통행료를 무료화하면 교통량이 유료화 때와 비교해 41%가량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부산에 유료 도로가 가장 많아 시민 부담이 크다'며 통행료 유료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부산시가 지난해 8개 민자도로에 재정 지원한 금액은 광안대교까지 포함하면 893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백양터널의 유료화 유지와 3개 차로 규모 신규 터널 증설은 전문가, 이용자, 지역주민 등과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부산시의회도 사실상 유료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부산시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부산시는 지역사회 여론을 의식해 통행료 유료화 방침을 철회하고 통행료 무료화에 따른 교통혼잡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물러섰다.
지역 시민사회 단체에서는 부산시가 사전에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주요 현안을 추진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기존 입장을 철회하면서 행정력을 낭비한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단체에 정치권까지 나선 구덕운동장 재개발도 흔들
부산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지난해 12월 해당 사업대상지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부산시는 7천990억원을 들여 구덕운동장 일대 1만1천577㎡에 1만5천석 규모 축구전용 구장을 비롯해 문화·생활체육시설과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해당 사업지역에 800가구 규모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덕운동장 아파트 건립 반대 주민협의회'가 재개발 추진에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협의회는 "부산시는 노후화된 구덕운동장 재개발을 명목으로 서구 도심의 유일한 공원에 아파트를 건설하려 한다"고 "구덕운동장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을 철회해달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시의회도 지난달 16일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던 만큼 충분한 검토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구덕운동장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곽규택 국회의원도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권도 반대 여론에 가세했다.
부산시가 아파트 건립을 축소하고 주민 편의시설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했지만 반대 여론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주민협의회는 지난 13일 재개발사업에 찬성했던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투표 청구를 내기도 했다.
공 청장은 지난 19일 "구덕운동장 재개발 구역 내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부산시도 지난 20일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추진에 시민 의견을 직접 듣는 의견 수렴 과정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르겠다며 한 발짝 더 물러섰다.
곽 의원은 지난 23일 국토부 장관을 만나 '구덕운동장 아파트 건립 반대 합동 건의문'을 전달한 뒤 "현재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 계획은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주민협의회도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말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어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 건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대로라면 사업 추진이 어려워 보인다.
도한영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부산시가 주요 현안사업을 추진하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잇따라 사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시정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osh998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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