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택배노동자, ‘물 한 병’이 보호 대책인가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규정했다. 한데 당장 기후재난에 직면한 이들과 미래세대에게, 이 목표가 충분할까. 헌법재판소에선 정부의 목표가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심판이 진행 중으로, 헌재는 오는 29일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 2020년 독일에서 정부의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지난 4월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인권 침해’로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한겨레는 이번 ‘기후소송’의 당사자이기도 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함께 기후재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박상호|택배노동자(전국택배노조 롯데본부장)
비가 오는 날 아침, 택배노동자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일할 생각을 하면 배송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피로하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다. 택배노동자들은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 날씨 변화에 따라 배송업무의 노동 강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무더위와 열대야 속에서도 날씨에 상관없이 택배를 배달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택배노동자들이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2023년 12월 폭설로 서울 시내 교통이 마비된 날에도 택배노동자의 위험한 택배배송은 계속 됐다. 일부 택배회사에서는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시, 배송책임이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노동자에게 있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택배노동자는 많지 않다. 이유는 실제로 택배회사와 계약하는 대리점에서 소속 택배노동자에게 이와 같은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폭염에도 대기업 택배회사는 ‘물 한 병’뿐
올해 서울의 열대야는 총 38일(지난 26일 기준)로 1907년 서울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런 기후위기 폭염 상황에서 한 대기업 택배회사가 내놓은 대책은 ‘하루 500㎖ 물 한 병을 40일 동안 지급하는 것’에 불과했다. 분류부터 배송까지 하루 10시간 가까운 시간을 외부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에게 500㎖ 물 한 병 지급하는 것이 제대로 된 대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택배회사는 이런 물 한 병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어 택배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일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지난 7월4일 경북 경산에서 40대 쿠팡 택배노동자가 배송업무 중 폭우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중지권’이라는, 작업 전이나 작업 중에 안전조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7월3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80㎜가 넘는 기록적 폭우가 내렸음에도 해당 택배회사인 쿠팡은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배송’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해당 택배노동자에겐 배송을 중단할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없었다.
작업중지권 없는 택배노동자는 일 하다 죽는다
일하다 죽기 위해 태어난 노동자는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하늘이 곧 일터의 지붕인 택배노동자에겐 스스로를 보호할 가림막이나 대피처가 없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거부하면서 우리는 택배회사의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없게 됐다. 작업중지권 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 하나 제대로 관철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택배노동자들은 일 하다 죽고 있다.
폭염, 폭우, 폭설, 홍수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잦아지고 극심해질 것이다. 택배노동자의 배송업무는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수많은 택배노동자들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 같은 위험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도 역시 헌법 34조에 따라 마땅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예방조치와, 배송업무 중단 같은 작업중지권 보장 등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속에서, 택배노동자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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