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은 인생 선생님” 원영적・태연적 사고의 나비효과
윤혜진 객원기자 2024. 8. 27. 09:01
아이돌(idol)의 사전적 의미는 우상이다. 그러나 저 멀리 선망의 대상을 팬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힘들 때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사이다. 덕질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
그동안 만난 아이돌 중에는 '애어른’이 꽤 많았다.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각종 트레이닝을 받고 사회에도 일찍 진출한 까닭에 말을 나눠보면 그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었다. 단독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난 한 아이돌 그룹 멤버는 인터뷰를 하다 울었다. "어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놓고 변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다"는 게 눈물의 이유였다. 쓴소리를 해줘서 고맙다니, 지적을 받으면 욱했던 기억이 나 반성했다.
긍정의 기운을 심어주는 '원영적 사고’와 '태연적 사고’
요즘도 아이돌들을 보며 자주 반성한다. 아이브를 좋아하는 '아기 다이브’인 딸은 얼마 전 여름 휴가지에서 갑자기 내린 비로 오후 일정이 틀어지자 "아침부터 비가 왔다면 섬 투어까지 못 했을 텐데, 지금 비가 오니까 러키OO(이름)잖아"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브 장원영의 '원영적 사고’를 아이가 짜증 날 법한 상황에 적용하고 있었다. 원영적 사고란 이런 식이다. 지난해 스페인의 한 빵집을 찾은 장원영은 사려던 빵을 눈앞에서 놓치자 오히려 좋아했다. "새걸로 준다. 아싸! 앞사람이 제가 사려는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러키하게 새로 갓 나온 빵을 받아보게 됐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원영적 사고가 SNS를 타고 유명해지자 장원영은 "내 사고는 '내가 하는 모든 건 어찌 됐든 러키인 거야’라고 생각하는 식인데,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니 좋다"며 "정신 승리 느낌도 있지만, 정신 승리는 아닌 것도 막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면 나는 진짜 승리까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예쁜 언니가 생각까지 예쁘니, 부모들이 아기 다이브의 덕질을 응원할 수밖에.
소녀시대 태연의 '태연적 사고’도 있다. 태연적 사고는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만사 귀찮을 때 유용하다. 방법은 '그래도 하는 것’이다. 태연이 평소 한 말들을 모아놓은 영상을 보면, 태연은 팬들의 하소연에 별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가 짜증 나도, 일터가 힘들어도 힘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다고 관둘 순 없잖아요" "오늘 촬영 못 해. 그래도 해야지" "인생 노잼 ㅠㅠ 맞아요. 인생은 노잼인데 어떡해. 살아야지"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안 할 수 있겠어. 지금 안 하면 더 크게 해야 한다" 등의 말은 2007년 데뷔한 태연이 어떻게 17년 동안 롱런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
장원영과 태연 외에도 인생 선생님은 많다. 배울 점이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선생님이다. 실제로 유료 소통 앱이나 인터뷰 등에서 접한 최애의 말을 좌우명 삼는 팬도 많다. 특히 열정과 자존감, 프로 정신에 대한 좋은 말이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치열한 경쟁 틈바구니에서 포기하지 않고 데뷔해 인기를 얻기까지 자존감이 낮거나 열정이 없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명언제조기로 유명한 아이돌 멤버들의 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여러분이 아직 어리다는 걸 잊지 마요. '이 길이 나한테 안 맞는 것 같아’라고 느낄 때 다른 걸 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젊음이 이기게 하세요"(NCT 마크), "걱정 없이 살면 좋겠지만 사람은 원래 사서도 걱정을 하니깐 그걸 지혜롭게 해소했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 오늘도 틈날 때 꼭 걱정과 잘 싸워낸 날 토닥여주기"(에이티즈 홍중), "세상에 속도를 맞출 필요가 있나요. 방향만 맞으면 된 거죠"(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태현), "인생을 마음먹은 대로 살되,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BTS RM).
최애의 잘못까지 감싸주는 덕질의 역기능
인생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덕질의 순기능이라면, 좋아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역기능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다. 다만 반면교사 삼아야 할 잘못까지 맹목적으로 감싸준다면 문제가 된다. 최근 BTS 슈가의 음주 운전 후폭풍이 거센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슈가는 8월 6일 오후 11시경 만취 상태로 전동 스쿠터를 타고 거주지로 이동하다가 나인원한남 정문 앞 인도에서 넘어졌다. 인근을 순찰 중이던 경찰이 바로 발견했는데, 당시 슈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을 한참 넘긴 0.227%였다.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잘못은 할 수 있다. 팬들의 분노에 더 불을 지핀 것은 슈가의 거짓 해명이다. 슈가는 사고 다음 날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글을 올렸다. "어젯밤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신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귀가했다. 가까운 거리라는 안이한 생각과 음주 상태에서는 전동 킥보드 이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도로교통법규를 위반했다. 집 앞 정문에서 전동 킥보드를 세우는 과정에서 혼자 넘어지게 됐고, 주변에 경찰이 계셔서 음주 측정한 결과 면허취소 처분과 범칙금이 부과됐다"고 경위를 밝히고 사과했다.
그러나 슈가가 탔다는 안장 달린 '전동 킥보드’에 대해 경찰은 '전동 스쿠터’로 판단했다. 전동 스쿠터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되며, 자동차 음주 운전과 동일한 기준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혈중알코올농도가 중요한데, 경찰 발견 당시 "맥주 한 잔 마시고 잠깐 운전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음주 운전이 적발된 아이돌 중 가장 높은 수치인 0.227%였다. 혈중알코올농도 0.2%가 넘으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분이 강화된다. 물론 슈가는 인명 사고가 없었고 초범인 점을 감안해 선처받을 여지가 있으나, 인도로 주행한 부분은 중대 과실 비율로 책정될 수 있다.
이번 일로 BTS 팬덤 아미는 미워도 슈가를 안고 7명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올 팬’ 기조와 슈가의 탈퇴를 원하는 팬으로 나뉘어 첨예한 대립 중이다. 특히 슈가의 입장문 발표 후 후속 조치를 일주일간 기다렸으나 소속사 하이브(빅히트뮤직)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슈가 탈퇴를 원하는 팬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하이브 사옥 앞에 근조 화환 30개를 설치했으며, "알코올 농도 커리어하이 0.227% 누가 너만큼 해" "슈가야 더 추해지기 전에 자진 탈퇴해" 등의 항의 메시지를 적은 트럭 2대를 서울 번화가에 돌아다니게 했다.
한편 7명을 지지하는 팬 중 일부는 온라인상에서 삐뚤어진 팬심을 보이고 있다. 슈가의 행동을 지적하는 글을 쓴 평론가를 상대로 사이버불링을 하는가 하면, 슈가와 전혀 상관없는 K-팝 팬덤과 아이돌을 상대로 슈가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허위 루머를 퍼뜨리고 악플 공격을 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슈가 관련 뉴스를 보며 BTS 데뷔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를 오랜만에 찾아봤다. '네 꿈이 뭐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뷔곡 'No More Dream’에 대한 얘기를 하며 슈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어서 잘 안다. 장래 희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10년 후 나의 꿈은 음악으로 세계 정복!"이라고 당차게 말했었다. '내 음악을 전 세계에 들려주고 싶다’는 꿈은 이루었으나, 슈가의 무대를 오랫동안 보고 싶은 팬들의 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은 팬이 인생의 선생님이 되어줄 때다. 이탈한 경로를 같이 삐뚤삐뚤 걷는 건 최애와 나 모두에게 위태로운 동행이다.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잘못은 할 수 있다. 팬들의 분노에 더 불을 지핀 것은 슈가의 거짓 해명이다. 슈가는 사고 다음 날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글을 올렸다. "어젯밤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신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귀가했다. 가까운 거리라는 안이한 생각과 음주 상태에서는 전동 킥보드 이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도로교통법규를 위반했다. 집 앞 정문에서 전동 킥보드를 세우는 과정에서 혼자 넘어지게 됐고, 주변에 경찰이 계셔서 음주 측정한 결과 면허취소 처분과 범칙금이 부과됐다"고 경위를 밝히고 사과했다.
그러나 슈가가 탔다는 안장 달린 '전동 킥보드’에 대해 경찰은 '전동 스쿠터’로 판단했다. 전동 스쿠터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되며, 자동차 음주 운전과 동일한 기준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혈중알코올농도가 중요한데, 경찰 발견 당시 "맥주 한 잔 마시고 잠깐 운전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음주 운전이 적발된 아이돌 중 가장 높은 수치인 0.227%였다. 혈중알코올농도 0.2%가 넘으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분이 강화된다. 물론 슈가는 인명 사고가 없었고 초범인 점을 감안해 선처받을 여지가 있으나, 인도로 주행한 부분은 중대 과실 비율로 책정될 수 있다.
이번 일로 BTS 팬덤 아미는 미워도 슈가를 안고 7명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올 팬’ 기조와 슈가의 탈퇴를 원하는 팬으로 나뉘어 첨예한 대립 중이다. 특히 슈가의 입장문 발표 후 후속 조치를 일주일간 기다렸으나 소속사 하이브(빅히트뮤직)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슈가 탈퇴를 원하는 팬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하이브 사옥 앞에 근조 화환 30개를 설치했으며, "알코올 농도 커리어하이 0.227% 누가 너만큼 해" "슈가야 더 추해지기 전에 자진 탈퇴해" 등의 항의 메시지를 적은 트럭 2대를 서울 번화가에 돌아다니게 했다.
한편 7명을 지지하는 팬 중 일부는 온라인상에서 삐뚤어진 팬심을 보이고 있다. 슈가의 행동을 지적하는 글을 쓴 평론가를 상대로 사이버불링을 하는가 하면, 슈가와 전혀 상관없는 K-팝 팬덤과 아이돌을 상대로 슈가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허위 루머를 퍼뜨리고 악플 공격을 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슈가 관련 뉴스를 보며 BTS 데뷔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를 오랜만에 찾아봤다. '네 꿈이 뭐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뷔곡 'No More Dream’에 대한 얘기를 하며 슈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어서 잘 안다. 장래 희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10년 후 나의 꿈은 음악으로 세계 정복!"이라고 당차게 말했었다. '내 음악을 전 세계에 들려주고 싶다’는 꿈은 이루었으나, 슈가의 무대를 오랫동안 보고 싶은 팬들의 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은 팬이 인생의 선생님이 되어줄 때다. 이탈한 경로를 같이 삐뚤삐뚤 걷는 건 최애와 나 모두에게 위태로운 동행이다.
윤혜진은
아이돌 조상 H.O.T.부터 블락비, 에이티즈까지 청양고추 매운맛에 중독된 K-팝 소나무다. 문화교양종합지와 패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기자를 거치며 덕업일치를 이루고, 지금은 아이와 뮤직비디오 같이 보는 엄마로 레벨업했다.
#아이돌 #원영적사고 #슈가 #여성동아
사진 출처 아이브·태연·트럭화환총공계정 SNS, 유튜브 캡쳐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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