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사표’ 함부로 쓰지 마라 [뉴스룸에서]

김태규 기자 2024. 8.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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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규 | 사회부장

검사가 조직을 떠날 때는 통상적인 절차가 있다. 사직서를 내고 검찰 내부게시판(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린다. 그러면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검사·수사관들이 댓글을 단다. 과거 인연과 추억을 떠올리며 앞날을 응원하는 덕담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모인 깨알 같은 메시지를 후배 검사가 모아 동판을 만들어 건넨다. 뿌듯한 선물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는 사직은 실존적 고민의 결과물이다. 1~2년 단위로 인사·평가의 대상이 되는 공무원 조직, 특히 전국 곳곳의 검찰청을 순환하는 검사들에게는 고민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도 괜찮은 수입이 보장되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기에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모색할 수 있다. 쿨하게 조직과 결별할 수 있는 ‘차가운 사직’이다.

인사철이 아닌 시기에 검사가 사표를 내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은 이상 부당한 수사 지휘에 반발해 사직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2년 3~4월, ‘이명박 검찰’의 수뇌부는 수사검사들의 ‘뜨거운 사표’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었다. 총리실 조직이 이명박 대통령 보위부대처럼 민간인을 사찰하는 등 불법을 일삼았고 청와대가 이를 지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수사팀은 지원관실 소속이었던 주무관 집에서 청와대 개입을 입증하는 문건이 담긴 유에스비(USB)를 발견했다.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핵심 물증이었지만 유에스비가 대검으로 반출되면서 수사는 차질을 빚었다. 앞서 수사팀은 윗선과 실무자를 연결하며 사찰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총리실 과장을 체포하려 했지만, 검찰 지휘부는 ‘4·11 총선 전에 조사하면 안 된다’며 막아섰고, 이때 평검사 3명이 사표를 내겠다며 강하게 반발한 ‘전사’가 있었다. 거듭되는 노골적 수사 방해에 결국 ㄱ검사가 4월7일 토요일 새벽에 사표를 냈다. 그러자 수사 방해자로 지목된 대검 고위 간부가 이튿날인 일요일에 ㄱ검사의 집까지 찾아가 사직을 만류했다. 대검 고위 간부는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수사검사의 사직으로 수뇌부의 수사 방해 행태가 드러날까 우려한 회유였다. 결국 ㄱ검사는 사의를 접었다. 2012년 4월 당시엔 조용히 넘어갔지만, 한겨레가 수개월 동안 취재 끝에 2013년 1월에 선보인 ‘정치검사의 민낯’ 보도를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이렇듯 수사검사의 사표는 상명하복 검찰 구조에서 직을 걸고 항거하는 것이기에 파급력이 강하다. 최근에도 ‘뜨거운 사표’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중앙지검의 김건희 여사 출장 조사에 이원석 검찰총장이 진상 파악을 지시하자 김경목 부부장검사가 사표를 낸 것이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 부부장은 주임검사도 아니었고 공정거래조사부에서 명품 가방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1부로 파견된 지원 인력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지시한 감찰의 타깃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승환 1차장(명품 가방 수수)과 조상원 4차장(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조사를 마쳤는데 진상 조사라니 회의를 느낀다’는 사직 사유도 괴상했다. 본인의 노고를 몰라주는 조직에 회의감이 생겼으면 떠나면 되는데, 돌발 상황에 놀란 검찰총장이 “사직 의사 철회와 복귀를 당부”하자 사의를 접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근무하던 검찰청에서 수사권 조정에 항의하는 표시로 검사들이 순차적으로 사표를 쓰자고 했지만, 거부했다. 사의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여선 안 된다”며 “수사를 제대로 잘하라는 검찰총장에 맞선 김 부부장검사의 사표는 여러모로 이상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대체 누구를 향하고 무엇을 위한 사직서였나.

김 부부장검사가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조사’를 마쳤다는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수사팀 결론은 무혐의였다. 그리고 수사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검찰총장의 요청으로 수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됐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입장을 내놨다. 용산은 김 여사 사건 수사의 추이를 모두 지켜봤고 지켜볼 것이다. 나도 사건의 결과와 검사의 미래를 지켜보겠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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