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차등·자동안정화…청년 위한 연금개혁 맞나? [왜냐면]

한겨레 2024. 8.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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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제대로 톺아보기 ⑧
양대노총·참여연대 등의 단체가 참여해 소득보장을 주장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이 지난 5월22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시민 공론화를 통해 다수 시민은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을 선택했고, 대다수의 시민은 국가책임 강화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유진 |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 일부가 발표되면서 연일 논란이 뜨겁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정부는 보험료 인상을 세대별로 달리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2030세대는 매년 0.5%씩, 4050세대는 1%씩 인상하여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세대 간 형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세대 간 차등 보험료 인상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세대 간 형평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계층 간 재분배까지 악화시키는 안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청년을 ‘한 세대’로 묶는 것부터 문제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구성원 간 이질성이 크다는 점에서 세대별 차등 보험료 적용은 부적절하다. 2030세대이더라도 인상된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있는 계층이 있고, 4050세대이더라도 보험료 인상이 부담되는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험료 인상이 어려웠던 것도 사용자와 절반씩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개인이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지역가입자의 비율이 높았던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세대 간 형평을 내세우면서 차등화된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발상은 세대 간 형평은커녕 계층 간 재분배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간 한번도 논의한 적 없던 ‘자동안정화 장치’가 연금개혁안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자동안정화 장치란 급여를 일부 거시경제 지표 등과 연동하여 조정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급여가 삭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면, 연금액 산정 때 수급 당시 물가를 반영하는 재평가율이 삭감된다. 수급 당시에는 연금 지급액에 반영된 물가인상률을 깎는 방식으로 수급액을 조정한다. 따라서 연금 수급액은 실제로 줄어든다. 소득대체율 40%를 고정한다고 하지만, 연금산정식의 소득 값에 복리로 적용되는 재평가율이 삭감되면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급여’라는 국민연금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폭으로 급여가 삭감되는 것이다. 자동안정화 장치가 아니라 ‘자동 삭감 장치’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결국 정부가 구상하는 연금개혁안은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란 탈을 썼지만, 실제로는 청년의 미래 연금급여를 삭감하고 심지어 부모세대의 노후안정까지 흔드는, 명백한 개악이다. 재정 안정화와 미래세대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급여 삭감식 개혁은 ‘용돈 연금’이란 비아냥을 듣는 국민연금을 아예 ‘푼돈 연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같다. 국민연금의 저급여 상태를 방치하면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노인 빈곤 자체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부담을 뒷세대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나아가 세대 간 연대를 흔드는 것을 개혁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21대 국회에서 실시했던 연금개혁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개혁안이라는 점이다. 공론화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사업장 가입자 전환, 출산·군복무 크레딧 강화, 보험료 지원 확대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를 요구했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만들자고 선택한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에 대하여는 가입자의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같이 국가의 분담과 국가의 재정책임 강화를 선택하였다. 오랜 기간 의제숙의단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출한 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뜬금없는 개혁안을 내민 것 자체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연금을 논의하는 데 있어 재정을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을 기록하는 국가에서, 제도 개혁을 통해 노인빈곤율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 노인빈곤의 고통을 얼마나 경감할 수 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국민연금의 목표는 기금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노후라는 사회적 위험에 공동체가 함께 그 짐을 짊어지겠다는 약속이자 책임이다. 초고령사회에 노후를 대비하는 현세대의 책임은 노후 안전망을 튼튼히 하여 빈곤한 노인이 없는 세상을 뒷세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현 정부는 21대 국회, 공론장에서 국민의 선택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연금개혁은 그저 기금 소진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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