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의 배터리ON] 극단 치닫는 전기차 포비아…진실과 오해 사이

박한나 2024. 8. 2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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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지 26일 지났지만 전기차 포비아 현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전기차 포비아를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포비아(Phobia)는 '공포증'을 뜻합니다. 특정 물건이나 환경,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입니다. 이러한 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을 '포브(phobe)'라고 부릅니다.

포브는 자신이 느끼는 공포가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를 설명합니다.

국내에서는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포비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난 매연을 전기차 화재로 오인해 소방당국이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기차 포비아라는 비합리적인 두려움이 사회적 비용 낭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작금의 과도한 포비아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는 이뿐이 아닙니다. 해운업계에서는 전기차 선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전기차 선적시 충전율 50% 이하 등을 포함한 해상운송 안전대책을 발표하자 불안한 선사들이 전기차 선적을 거부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비자들 스스로가 적어도 자극적인 전기차 화재 영상을 시청하거나 소문 등 불명확한 근거에 기반해 공포증을 겪는 포브가 되진 말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전기차가 내연차보다 화재 위험이 높은가?'를 궁금해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전기차가 내연차와 비교해 화재가 더 자주 나고 위험하다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 전기차는 내연차 대비 화재 발생율이 낮습니다. 소방청이 발표한 '자동차 유종별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는 총 157건에 불과합니다. 약 11.6일에 1건 정도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반면 경유차, 휘발유차 등 내연기관차는 5년간 총 1만662건의 화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전기차 화재 대비 67.9배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내연차는 하루 동안 5.84건의 화재 사고가 일어난 꼴이며, 하이브리드는 131건입니다.

또 지난해 국립소방연구원이 발간한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봐도 2022년 기준 1만대당 화재 건수는 내연기관차 1.84대, 전기차 1.12대로 내연기관차가 더 많은 상황입니다. 이는 단순히 전기차의 수가 적어서라기 보다는 내연차가 휘발유나 경유 등 가연성 연료를 사용해 화재 발생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모두 화재가 발생합니다. 전기차의 화재 발생 빈도는 내연차보다 낮습니다"라며 "열폭주가 일어나면 완전 연소까지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사전에 이를 감지하는 BMS 시스템 고도화 등으로 화재를 예방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이번 화재 이슈 이후에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 규제가 쏟아지고 있습니다"라며 "이런 규제들은 화재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는 낮은 반면 과도한 대책으로 전기차 사용성 저하를 야기해 국내 전기차 보급과 확산만 억제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전기차 화재는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단락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기인합니다. 전기차 충전율이 높거나 단순히 에너지 보유량이 많다고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배터리처럼 100% 충전하더라도 충분한 안전 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전기차 배터리를 설계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지하주차장에 90% 이상 충전한 전기차의 출입을 금지하는 게 골자인 일명 전기차 완충 금지 조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충전율을 기준으로 한 규제라는 점에서 정작 화재 예방 효과는 없어 불안감만 더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전기차 안전 문제를 향한 과도한 우려와 빗나간 대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포비아를 극복 과제로 삼고 완성차와 배터리, 소재, 전기차 충전기(장비) 등 전기차 관련 제조사들이 제품 안전성을 보장하도록 돕고,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국내 전기차 수요는 늘어나던 상황입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택시 외 전기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올해 들어 7월까지 6만4583대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동기(5만1251대)보다 26%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는 일반소비자가 자가용으로 이용하는 대중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여기서 이번 화재로 잘못된 규제나 과도한 대책이 전기차 보급에 장애물이 될 수 있어 완성차와 배터리업계는 균형 잡힌 화재 예방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국내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와 배터리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 번의 화재 사고는 소비자 신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와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15년 이상 노하우를 바탕으로 BMS를 개발했습니다. BMS는 다중안전 체계를 바탕으로 총 3단계의 과충전 방지 기술이 적용돼 있어 현재까지 단 한 건의 과충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 BMS 감지한 배터리 이상 징후는 고객에게 문자메시지로 신속하게 전송되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또 국내 배터리 3사의 BMS 기술력은 글로벌 선두입니다. 특허정보조사전문업체 WIPS에 따르면 2018~2022년 상위 10위의 한국·중국·일본 배터리업체의 특허는 총 1만3500건이었는데, 이중 국내 3사의 합산 특허는 7400건(55%)에 달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초로 세라믹이 코팅된 안전상 강화 분리막(SRS)을 개발했습니다. SRS는 배터리 내부의 양극과 음극이 서로 만나는 것을 막아 열 폭주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합니다. SK온은 신규 열전이(TP) 방지 기술과 배터리 열관리에 중요한 액침냉각 기술 등을 개발 중이다. 삼성SDI도 각형에 가스 배출 장치를 적용해 고온 가스가 쉽게 배출돼 폭발을 방지하고 있다.

또 다른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포비아가 근거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화재 안전성과 현황을 바라보는 등 전기차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모두가 합심해 전기차 이용자들에게 더욱 안전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고 한국 전기차 산업 생태계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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