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안 개구리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8. 2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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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여의도 면적이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고 남에게 설명하고 싶을 때면 계산기를 옆에 끼고 꼭 여의도 면적(2.9㎢)으로 나눠보곤 했다.

그 가짜 준거가 시나브로 보편과 상식, 때때로 공정과 정의의 외피까지 쓰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부단히 '여의도 면적' 바깥의 세상을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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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를 상공에서 내려다본 모습. ⓒ시사IN 이명익

어린 시절 여의도 면적이 몹시 궁금했다. TV 뉴스만 틀면 그 단어가 흘러나왔다. 수해 지역 규모든 도시개발 예정 용지 면적이든 웬만한 땅 넓이는 모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로 표현됐다. 비수도권 농촌 거주 어린이는 그 표현이 마치 ‘콩 한 되’ ‘쌀 한 섬’처럼 준(準)공식적으로 쓰이는 도량형 단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고 남에게 설명하고 싶을 때면 계산기를 옆에 끼고 꼭 여의도 면적(2.9㎢)으로 나눠보곤 했다. 여의도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데도.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그냥 그건 방송사 기자들이 죄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라는 걸. 자신들이 익숙한 지역이라 편하게 갖다 썼을 거고 자주 교류하는 취재원들 역시 여의도를 포함한 서울 지형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일 테니 여의도 면적을 표준 단위라도 되는 듯 써도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문제는 그 가짜 표준이 진짜 표준, 보편적 잣대인 것처럼 둔갑한다는 사실이다. 여의도와 아무 관련 없는 시골 어린이가 표준 도량형인 줄 알고 따라 쓸 정도로.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관용구는 이제 잘 안 보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표현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넘실댄다. 특히 부동산 이슈나 상속세, 종부세 같은 세금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강남 3구 아니면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줄임말)’ 아니면 적어도 서울, 아니 최소한 경기 분당·판교·동탄쯤에 ‘똘똘한 집 한 채’ 정도의 자산은 갖고 있거나 물려준(받는)다는 전제 아래 논의되고 있다. 왜 한국의 절대 다수 국민들이 은마니 마래푸니 서울 특정 지역 아파트 이름을 들먹이며 2억원대 상속세가 0원으로 ‘절세’된다며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시뮬레이션 기사의 홍수에 노출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정부의 상속세 개편안에서 설정해둔 ‘자녀 1인당 공제액’, 즉 ‘이 정도는 아무 과세 없이 상속하(받으)라’는 금액은 5억원이다. 이만한 금액 이상을 순자산으로 가진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7.3%다. 흔히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대표되는 10억원 이상의 순자산 가구는 10.3%다. 이들이 대한민국 평균이고 보편적 준거집단일까? 상속세 부담이 나의 일 혹은 우리 가족(지인)의 일이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 나머지 72.7%(순자산 5억원 미만), 89.7%(순자산 10억원 미만)의 국민의 처지를 살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국정 운영(정부)도 정치(국회)도 보도(언론)도 아니다.

목소리가 들려야만 그 실체가 존재한다는 착각은 무지할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디에 살고, 내 옆에 누가 있으며,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어떤 이들의 목소리인지를 끊임없이 ‘관찰’하지 않으면 여의도 면적 같은 우물 안에 갇혀 뱅뱅 돌 수밖에 없다. 그 가짜 준거가 시나브로 보편과 상식, 때때로 공정과 정의의 외피까지 쓰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부단히 ‘여의도 면적’ 바깥의 세상을 살펴볼 일이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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